이상형이라.

원두막에서 말 나온 김에. 이상형에 대해 끄적.
당신의 이상형은 무엇인가?

내 이상형은 딱히 딱 정해놓고 있진 않다. 그 때 그 때 변하는 편.
이럴 때엔 더해나가는 것보단 빼나가는 편이 빠르다. 다시 말해 싫은 쪽을 거론하는 편이 낫다는 것.

1. 목소리가 탁하지 않을 것. 이게 제일 중요하다. 곱거나 예쁘거나 성숙하거나는 둘째고,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탁해질 것 같은 목소리는 싫다. 남자도 마찬가지이므로 나도 딴에는 목소리가 탁하게 들리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대신 가볍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편. 적당히 멋진 목소리가 되어 주면 좋을텐데.
2. 선이 분명할 것. 얼굴선 같은 차원이 아니라 외모 성격 모든 면에서 자기 선이 있어야 한다. 이건 봐야 아는 문제니까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3. 어느 분야든 좋아하는 것이 잡다하지 않고 제법 명확할 것. 이것저것 다 할 줄 알아요-는 싫다. 꼭 일정 수준 아니어도 좋으니까 왜 좋아하는지를 알고 있고 즐길줄 알면 좋겠다. 즐길줄 아는 사람은 끼어들어 설명하려 들기 전에 즐기는 모습만으로도 상대를 기분 좋게 해 주니까. 즐길 줄 모르면, 선생님도 못 되는 단순 설명꾼, 얕디 얕은 상담자로 전락한다. 자신이 그걸 할 줄 아는 이유를 대기 위해서. 난 그런 '객관'은 싫다.
4. 여자들이 남자들은 보통 가슴 큰 여자를 좋아하잖느냐고 하지만 난 거유는 질색. 그렇다고 빈유 취향도 아니지만.
5. 글쟁이나 프로그래머라는 생물의 생리를 이해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암만 생각해도 난 날 챙기기 좋아하거나, 하루에 한 번은 꼭 전화해줘야 한다거나. 이런 류의 연애는 죽어도 못할 것 같으니까. 마감이란 녀석이 뭔지 알아줄 수 있기를.
6. 동갑은 싫다. 반드시 나이 문제라기보다도, 나는 내가 어느 정도 숙여주든 상대가 숙여주든 어느 정도 숙여주고 들어가는 형태의 관계가 마음이 편해서 좋다. 비굴해지란 게 아니라, 존중의 의미로. 나이의 경우 일단 같은 나이라는 입장에 서면 은연중에 까고 들어가는 게 생기나보다. 나는 그 편하게 '까고' 들어오는 접근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이성간에, 더군다나 내 면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어렵고 상대도 볼 수 없는 바로이음(온라인)상에서는. 마음을 까고 이야기할 수 있는 솔직함과, 초장부터 까놓고 편하게 대하려하는 무모함은 다르다. 전자와 달리 후자는 명백하게 상대에게 거부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게 마련. 같이 술 퍼마시고 엎치락 뒷치락하면서 뒷감당 안 해도 될 정도(지경?)의 오픈 마인드라면 모를까, 난 아니다.
7. 외모는 사실 딱히 취향이 없다. 이를테면 좋아하는 인상이 무엇이냐 물러도 몹시 중구난방이기 때문에. 호감은 이런 느낌, 저런 느낌, 각각이 모두 다르게 반응하곤 했다. 그러니 외모에 대한 이상형은 모르겠다. 단, 보이시 계열이나 성격이 남자같은 쪽은 정말 사양이다. 안 그래도 난 남자가 싫다. (……)
8. 스토킹 비슷한 녀석을 몇 번 당해봤지만, 집착성향이 있는 사람은 질색이다. 밤늦게 받고 싶지 않은 전화를 받거나, 시도 때도 없이 원치 않는 휴대전화 전언이나 메신저 쪽지를 받거나. 게시물마다 원치 않는 덧글을 받거나. 심지어는 이름을 숨긴 상대의 간접고백을 3자에게서 전해받거나. 호의든 악의든, 동성이든 이성이든. 긴 시간 해 오면서 제법 자주 있었고, 결말은 처참하거나 현재진행형의 변태로 남는 경우도 있다. (이건 인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내가 괜히 말을 들어준 탓일 게다) 마음을 열지 않은 상대에게서 일정 이상의 관심이나 반응을 받는 건 그야말로 최악. 그래서일까. 나는 마음이 있는 상대가 아직 없었지만- 있다면 안절부절하느니 말하고 새끈하게 차이는 쪽을 택할 생각을 먹게 됐다. 반대도 마찬가지. 뒷통수치기가 아니라 앞으로 직접 당신에게 어떤 걸 원한다고 부딪쳐 온다면, 나에게 안 맞는다면 새끈하게 거절해주기로. 여하간 엉뚱한 쪽으로 일정 선을 넘어서기 쉬운 부류의 인간은 대하기 괴롭다. 동성인 것도 정말 문제지만, 이성 문제라면 더 대하기 난처하다.
9. 그리고 나는 누구의 오해처럼 로리콘은 아니다. (…) 수비범위는 위 아래를 가리진 않지만.
단지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연상밖엔 길이 없다고 하고 취향만 아는 사람은 연하에서 찾으라고 한다. 어느 쪽이 맞을까나?
10. 순수 계열, 순진 계열은 사양이다.
차라리 알 거 아는 쪽이 좋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와 경험 탓에, 특히 8번 항목에 대해서는 생각만 해도 괴롭다.
그리고 지금도 진행중일 수 있고, 사람을 순수하게 보질 못하게 되는 것도 있다. 선을 넘는 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고 해도 나는 더 이상 용납을 못 하는 것. 서로 거리를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긴 시간에 거쳐 서서히 가까워질 수 있는 상대를 찾고 싶다.

그런 점에서 지금 내게 닿는 몇 가닥의 시선은 내가 괜찮아서 혹은 좋아서 닿는게 아니다. 애정 차원의 문제가 아니란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바라보지도 않는다. 그게 무슨 내가 좋아서 달려드는 거라고, 당사자인 내가 행여나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난 그렇게 잘나지 못했거든.) 일단 나 스스로가 그 관심을 받기에 온당하지도 않다는 걸 내가 알지만. 하지만 그에 대해 "넌 날 보지 마, 오지 마"라고 딱 한 마디 던져 차단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기출문제가 답까지 나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 지경으로 돌아버릴까봐 차마 딱 이야기해주진 못하는 게 있다. (나만 당하면 말을 않는데 다수가 피해를 보니까 더 문제다. 그리고 누구든 그리 돌아버릴 수있다. 특정 누구가 아니라도. 누리그물이라면 더욱이!) 그냥 매몰차게 당신은 싫어 하는 게 옳은지, 아니면 그냥 내가 속앓이를 하는 게 옳은 건지. 무엇이 옳은지는 모르ㅤㄱㅖㅆ다. 하지만 자리를 빌려 말하자면 - 무지 부담스럽다. 그러니 그만 좀 해 줘. 그나마 내가 지기라는 입장으로 어떻게든 표정관리를 해 주고 있을 때 말이다.


결국 내가 애인을 사귀고 연애를 하려면 [만화인]을 때려치는 수밖에 없겠다. 젠장.
끝끝내 선을 넘어 거부당한 상대가 내게 왜 나를 거부하냐고, 나를 상처 줬다며 소리를 지른들(……무슨 신파극같지? 이런 소리를 심심하면 당해보면 감상이 달라질걸?) 그런 사람 여럿이 여러 각도로 찔러들어오는 칼을 그냥 웃으며 받아줘야 하는 나는 솔직한 심정으로 걸레짝이다. 그러니 비슷한 각도로 달려오는 상대를 순수하게 받아들여주기엔, 이미 늦었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상처를 이야기하고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는게 온당한건지.
그거 아나. 당신은 하나만 상대해도 되지만 그 하나는 다수를 상대해야 한단 말이지.
삥뜯는 깡패가 정정당당을 말하는 게 말이 된다고 보냐? 같은 이치 아니냐.
이젠 그 판단조차 하기 귀찮아진거다. 웃으면서, 농담조로 연애하고 싶다 이야기를 해도 마음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 요인에 있는 건 언제나 눈 앞에 닥친 이 웃지도 못할 지경으로 엿같은 상황들 덕이니까. 웃는다고 마냥 웃는 것 같은가. 그냥 웃을 때 웃어넘기든지. 행여나 핀잔 먹일 생각은 말라고. 정말, 웃고 있어도 괴로워진다.


.........................


자, 혼자 괜히 앞 뒤 전혀 맞지 않는 생지랄 생쇼를 펼치고 있는 건 나도 아니까 굳이 꼬집어서 이야기하는 버릇없는 짓은 삼가주시고.

아래 미농 님의 글을 보니까. 물론 그것도 맞는 말씀이긴 한데.
그래도 전 기댈 자리, 껴안을 수 있는 상대를 원합니다. 사랑 따위 있을 수 없다고, 남녀간의 사랑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는 류의 글도 일리는 있지만 역시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도 일리가 있겠지요. 저는, 그런 상대가 있었으면 해요. 제아무리 골때리는 상황을 암만 겪고, 원치 않는 반응과 관심 때문에 마음이 괴상망측해진다고 해도.

제가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괴로운 일이 있었거나 하더라도 그건 제게 국한된 일이겠지요. 이런 글은, 순전히 제 심정 토로한 것 뿐이니까요. 다른 사람에겐 다른 사람의 '경우의 수'란 게 있게 마련이니까. 서로가 삶을 추구하는 방법이 다르니까. 전 그래도 서로 보듬고 안을 수 있는 상대가 있었으면 해요. 그런 심정이지요.

미농 님의 행복과는 다른 이런 쪽의 행복도 있을 테지요. 저는 이쪽을 원해요.
설령 이런 우스꽝스런 꼴이라고 해도.

by 서찬휘 | 2005/02/13 05:39 | 삶의 흔적들 | 트랙백 | 덧글(7)

트랙백 주소 : http://seochnh.egloos.com/tb/90182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미농 at 2005/02/13 05:51
글쎄 꼭 애인을 사귀어야만 하는 이유라도 ? 만화와 결혼하면 되잖아요 나도 그랬는데.. 살아있는 생명체하고 결혼하는 건 좀 위험한 일.
Commented by 서찬휘 at 2005/02/13 05:59
그건 단지 삶을 추구하는 방식의 차이겠지요.
Commented by 알트아이젠 at 2005/02/13 09:07
으음...미묘하게 까다로운(?) 취향이지만, 몇 부분은 저도 참고할정도로 좋은 부분이라고 보네요.
Commented by 유칼리 at 2005/02/13 10:35
이사람...올해도 글렀구만...쯔쯔
Commented at 2005/02/13 15:4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루우 at 2005/02/13 16:36
결국 이 업계(?)에서 종사하시는 분을 만날 수 밖에 없으시겠군요. 저는 운 좋게 인연이 닿아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같은 업계쪽으로요.

솔직히 서찬휘님께 보통 여자분은 맞출 수 없을 듯합니다. 그래도 인연이 있다면 꼭 만나실 수 있을거에요. 제 친구도 찬휘님같은 사람입니다만, 그 친구보다 더한 여자친구 만나서 잘 살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미농 at 2005/02/14 15:06
사람만큼, 사랑만큼 달리 지치는 것도 없어, 무생물이 좋아요 전. 이런 이야기였답니다.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