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1월 24일
사실은 단지 사실일 뿐.
1.
"만화가 안 팔린다 안 팔린다 해도 온라인 만화가 책으로 나오면 저렇게 많이 팔리지 않는가, 결국은 기존 만화들이 수준이 낮고 재미를 주지 못하기 때문에 안 팔리는 거 아닌가."
라는 말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저만한 사람들이 봤잖느냐, 명작이고 걸작이기 때문 아니겠느냐?"
라거나
"누가 뭐랬거나 우리나라 국민 반 가량이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있다. 그들이 옳기 때문이다"
혹은
"우리나라에서 판매부수 1,2,3등을 차지하고 있는 게 조중동 아닌가, 그만큼 많이 본다는 것 자체가 그들의 정당함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같은 말과 다른 게 무엇일까?
본질적으로는 같다. 좀 더 나아가자면 외향상으론 달라도 "내가 볼 만한 만화가 없다, (그러니까) 한국 만화계는 수준이 낮다"같은 말과도 다를 게 없다.
2.
때로 토론이나 논쟁 등에서 드러난 '사실', 고상하게 영어쓴다고 '팩트'라고 종종 부르곤 하는 그 녀석을 들이대어 설명하고 이를 기정 사실화시키는 이들을 본다. 문제는, 이러한 태도는 반은 맞아도 반은 틀릴 수 있음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것.
드러난 현상 뒤에는 그 현상이 어찌 일어났는지, 왜 그리 되고 그게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찰이 이뤄져야 비로소 설명이 가능하다. 주관이든 객관이든 이러한 '설명이 가능한' 부분이라면 사람들은 납득을 하고, 생각이 다르더라도 서로 인정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것. 그러나 단지 드러난 '사실'에만 천착해 그것을 근거로 모든 걸 설명하려 들 때, 근거를 위한 근거가 붙고 말을 위한 말이 붙어 이야기가 몹시 지저분해진다. 그러나 정작, 그 반대 명제를 들이댈 때에는 답을 할 수 없다. 그들은 거기까진 생각해보질 못했기, 아니 않기 때문이다. 가장 편한 대답이 하나 있긴 하다. "그건 그들이 노력해서 잘 만들면 해결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거기까지 이야기할 의무는 없다. 단지 지적할 뿐-이라는 것.)" 저 말들에서 드러난 '사실'만을 보자. '사실'은, 정확히는 진실이 아니고 진리도 아니며 하물며 정의도 아니다. 단지 드러난 사실일 뿐, 결국 그 사실이 어떤 형태를 띠고 있느냐에 따라 판단이 결정되는 거지 사실 자체가 진리는 아닌 것이다.
이런 방식의 이야기 전개는 흔히 한 쪽을 높이고 한 쪽더러 너희는 그것을 못하고 있으니 병신 쪼다 머저리다, 제대로 해라 류의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물론 논리정연을 겉에 바르고) 포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입장 차이와 사실관계를 따지기보다는 드러난 현상에 대해 꼬집기 위해 그 반대 위치에 있는 '커보이는/잘 나가는' 것을 예로 들거나, 그에 편승하고 있는 자신을 재발견하고 그 만족감에 휩싸이고자 하는 것. 그러나 그 본질이 전혀 예로 들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조차 모르기 때문에 비극인 것이다.
순수한 칭찬이 아니라면, 제대로 골수까지 파고드는 촌철살인의 비평과 비판이 아니라면, 애초에 '(나보다/저거보다) 안 돼 보이는 것'에 대해 적당히 걷어차서 글거리를 만들고 싶은 의도라면 시도를 않는 게 좋다. 그러나 역시 같은 글쟁이로서 고백하건대, 저렇게 쓰는 게 글 쓰기는 쉽다. 일단 주제에 접근하기가 매우 용이하니까. 그것도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만화가 안 팔린다 안 팔린다 해도 온라인 만화가 책으로 나오면 저렇게 많이 팔리지 않는가, 결국은 기존 만화들이 수준이 낮고 재미를 주지 못하기 때문에 안 팔리는 거 아닌가."
라는 말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저만한 사람들이 봤잖느냐, 명작이고 걸작이기 때문 아니겠느냐?"
라거나
"누가 뭐랬거나 우리나라 국민 반 가량이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있다. 그들이 옳기 때문이다"
혹은
"우리나라에서 판매부수 1,2,3등을 차지하고 있는 게 조중동 아닌가, 그만큼 많이 본다는 것 자체가 그들의 정당함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같은 말과 다른 게 무엇일까?
본질적으로는 같다. 좀 더 나아가자면 외향상으론 달라도 "내가 볼 만한 만화가 없다, (그러니까) 한국 만화계는 수준이 낮다"같은 말과도 다를 게 없다.
2.
때로 토론이나 논쟁 등에서 드러난 '사실', 고상하게 영어쓴다고 '팩트'라고 종종 부르곤 하는 그 녀석을 들이대어 설명하고 이를 기정 사실화시키는 이들을 본다. 문제는, 이러한 태도는 반은 맞아도 반은 틀릴 수 있음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것.
드러난 현상 뒤에는 그 현상이 어찌 일어났는지, 왜 그리 되고 그게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찰이 이뤄져야 비로소 설명이 가능하다. 주관이든 객관이든 이러한 '설명이 가능한' 부분이라면 사람들은 납득을 하고, 생각이 다르더라도 서로 인정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것. 그러나 단지 드러난 '사실'에만 천착해 그것을 근거로 모든 걸 설명하려 들 때, 근거를 위한 근거가 붙고 말을 위한 말이 붙어 이야기가 몹시 지저분해진다. 그러나 정작, 그 반대 명제를 들이댈 때에는 답을 할 수 없다. 그들은 거기까진 생각해보질 못했기, 아니 않기 때문이다. 가장 편한 대답이 하나 있긴 하다. "그건 그들이 노력해서 잘 만들면 해결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거기까지 이야기할 의무는 없다. 단지 지적할 뿐-이라는 것.)" 저 말들에서 드러난 '사실'만을 보자. '사실'은, 정확히는 진실이 아니고 진리도 아니며 하물며 정의도 아니다. 단지 드러난 사실일 뿐, 결국 그 사실이 어떤 형태를 띠고 있느냐에 따라 판단이 결정되는 거지 사실 자체가 진리는 아닌 것이다.
이런 방식의 이야기 전개는 흔히 한 쪽을 높이고 한 쪽더러 너희는 그것을 못하고 있으니 병신 쪼다 머저리다, 제대로 해라 류의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물론 논리정연을 겉에 바르고) 포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입장 차이와 사실관계를 따지기보다는 드러난 현상에 대해 꼬집기 위해 그 반대 위치에 있는 '커보이는/잘 나가는' 것을 예로 들거나, 그에 편승하고 있는 자신을 재발견하고 그 만족감에 휩싸이고자 하는 것. 그러나 그 본질이 전혀 예로 들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조차 모르기 때문에 비극인 것이다.
순수한 칭찬이 아니라면, 제대로 골수까지 파고드는 촌철살인의 비평과 비판이 아니라면, 애초에 '(나보다/저거보다) 안 돼 보이는 것'에 대해 적당히 걷어차서 글거리를 만들고 싶은 의도라면 시도를 않는 게 좋다. 그러나 역시 같은 글쟁이로서 고백하건대, 저렇게 쓰는 게 글 쓰기는 쉽다. 일단 주제에 접근하기가 매우 용이하니까. 그것도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 by | 2005/01/24 19:25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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