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구축의 길 #2 - 여우와 두루미가 주는 교훈

이솝우화 중에 「여우와 두루미(혹은 '여우와 학')」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여우가 두루미를 초대해선 납작한 접시에 스프를 담아주곤 먹으라고 권하고, 여기에 빡돈 두루미는 며칠 후에 똑같이 초대해선 호리병에다 생선을 집어넣고 먹으라고 권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다.

여기서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녀야 한다는 아름다운 교훈을 얻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서로에게 맞지 않는 틀거리를 강요해선 죽도 밥도 안 된다는 현실도 깨달을 수 있다. 곧죽어도 '이 맛있는 걸 왜 못먹는데, 너 바보냐?'라면서 냠냠거리고 있어보라. 그거야말로 우정파괴극이로다.

물론 이렇게 비틀어서 볼 수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이 이야기는 비단 초등학생들용 '교훈'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아무리 맛난 녀석이라도 일단 먹을 수 있게는 해 줘야 한다라는 보편타당하면서도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본론인 콘텐츠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면, 어떠한 콘텐츠를 갖춘다는 건 그 콘텐츠를 보러 오라고 사람을 초대하는 것과 같다.

콘텐츠는 사방 천지에 널린 모든 소재를 골라다, 요리를 해 내고 그 요리에 걸맞는 그릇에 담아 손님에게 내미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물론, 그 요리와 그 그릇에 걸맞는 손님이 오게끔 식탁을 꾸미거나 초대장을 골라 날리는 선공도 필요할 것이고. 요리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 과정 하나하나는 요리를 하는 이의 정성과 노력과 성의, 그리고 먹을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시작부터 끝까지 배어 나와야 맛이 있다는 것을. 이건 10분이면 한 그릇 끓이는 라면에조차 적용되는 것이다. 각설하고, 이를 간과한 콘텐츠는 앞서의 우화가 보여주듯 서로 빡도는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는다.

즉, 콘텐츠를 구축하겠다 한다면 시작에서부터 천천히 고민해봐야 하는 거다. 누굴 초대해서 어떤 요리를 어떤 그릇에 담아 내밀 것이고, 그 손님이 만족할 것인가 까지를 말이다. 3분 요리 레토로트 팩을 찍 찢어다 그릇에 담아 내놓는 수준이거나, 식재료를 날것 그대로 툭 내놓는 수준이어선 곤란할 것임은 자명하지 않은가? 콘텐츠를 구축하겠다 나선 당신은, 이미 요리사다. 요리사의 자존심을 걸고 냄비와 식칼을 휘두르지 않으면 중원재패의 꿈은 멀 뿐이다. 알겠나 비룡! (버럭)

만족이란 부분이 워낙 개인차가 많이 나기에 어려울 듯하다면, 정말 입 안에 넣으면 구름이 춤추고 땅이 갈라지며 용이 하늘을 나는 진미를 선보여주든지, 아니면 평범한 맛이지만 계속 여기서 먹을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하든지, 조교를 해서 계속 들르지 않으면 안 되게 하든지 갖가지 방법을 쓰면 된다. 그것은 하는 사람의 몫이자 능력. 사이좋은 여우와 두루미가 될 것인지, 서로 빡 돌아서 원수가 되든지 - 선택은 자유지만 후자라면 당신에게 길은 없다. 그런 당신의 콘텐츠, 다른 데 찾아보면 그만이니까.

지극히 뻔하고 상식선인 이야기를 구구절절 했다고? 근데 어쩌나.
우리는 그 뻔하고 상식선인 것조차 지키지 못한 녀석들을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을.


- 난 강하진 않지만, 내 바람은 높은 곳을 날아.
찬휘였습니다.


http://www.manhwain.com/
(4337. 12. 21.)


.......


다음 화 예고.
'틀거리의 필요성 - 찰흙과 레고'
혹은
'흘리지 말아야 할 건 침만이 아니다'(?)

by 서찬휘 | 2004/12/21 06:52 | 트랙백 | 덧글(2)

트랙백 주소 : http://seochnh.egloos.com/tb/84477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슈퍼히로 at 2004/12/21 20:41
침을 흘릴만한 컨텐츠를 제공하려면 19금 딱지를 붙여야......(그만해!!)
Commented by 태엽이 at 2004/12/22 10:32
사람들 관심사야 시간따라 변하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총합적이고 철저하게 관리되는 개방적 성격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원하는 게 어디있는지 금방 알 수 있는 것. 이 요즘의 유행인 듯.
근데 그걸 자기것도 아니면서 너무 복사남발해대는 게 문제지...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