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12일
…….
1.
학교. 특히 대학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옛 상처를 헤집는 기분이 들어 늘 괴롭다.
길게 썼지만 다 지워버리고…
모든 아이들이 대학 아니면 살 길 없게 만드는 게 과연 옳을까?
대학의 기능을 부정할 생각도 없고, 대학 생활도 해 볼만 하다는거야 맞지.
그러나 그게 전부가 된 다음이면?
'그거 대학 들어간 다음에 해도 돼'라는 표현은 그래서 무서운 거다.
'(상류) 대학입학'이라는 목표가 충족되지 않는 한 아이들은 미완성이요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외의 다른 기능, 다른 취향, 다른 취미… 아무것도 닦을 여력이 없다. 초등학생이 학원 서너 개 돌고 11시 넘어서 집에 들어오는 현실이 과연 바른 거냐고. 들어가놓고서도 여긴 아니라며 결국 다른 데를 다시 시험치기 위해 시간을 보내고. 그게 나쁘단 게 아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것만을 목표로 해야 하며, 그 최대 목표가 '상류대학'이 되어야 한다면. 나머지는 뭐가 될까? 열심히 노력하면 그리 될 수 있다는 허울 좋은 핑계다. 사실은, 세습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나머지 9할9푼을 예속시킬 수 있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 거야.
우리는 알면서도(혹은 눈을 가린 채로) 그 장단에 발맞춰나갈 수밖에 없는 거고.
이유는 역시 간단하다. 어른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남들 하는 만큼은 해야 한다!"
2.
…….
공부를 하고 싶다.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 이상도 목표도 있다.
그러나 내게 학교란 공간은 이를 이룰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으며 대학 또한 살아가며 거치는 것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바라보는 곳은 저 멀리 다른 곳에 있기에.
그렇기에 가라는 방향을 거부하고 싸웠으며 그 결과 지금의 내가 있다.
중고교시절 아버지께서는 '좋은 대학, 좋은 회사'를 강조하시는 전형적인 가부장 아버지셨다. 그 명령을 거부하며 바닥을 기어 온(지금도 기고 있는) 나는, 걱정과는 달리 나름대로 즐겁게 내 공부를 하며 살아간다. 최소한- 내겐 가고자 하는 길이 있고, 스스로 즐겁고, 불행하다 여기지 않는다. 또한, 심심하거나 할 것 없다며 투덜댈 여유조차 없다. 쌓아가는 만큼 남이 나를 필요로 하는 경우도 늘어난다. 향상심과 정열, 열정. 이게 나를 움직이는 동력원이자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 그 과정에서 상처도 많이 입었지만…. 뭐, 자수성가형 가부장적 아버지를 둔 맏이라면 대부분 비슷한 일을 겪을테니 그 자체가 대단한 건 아니겠지만. 이 불효자식은 거기에 반항했다.
좋은 대학이 아니었어도- 학창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어도-
가란 대로 가지 않아도- 이렇게도 갈 수 있구나. 갈 수 있었노라고.
어쩌면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 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탄핵 때도 이야기했지만.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내 길로 살아가는 방법을.
보이는 길 밖에도 세상은 있음을.
내 자식에게 알려주고 싶다.
내가 늘 힘들어 했던 건.
그런 걸 알려주는, 조언해주는 선배도 어른도 없었다는 것이었으니.
나는 그래서 어머니께 이리 말했었다.
"전 꼭 제가 만족하는 방향으로 성공해야 해요."
3.
세상은 다양한 사람이 있고,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
그 다양성을 어려서부터 짓밟혀 온 아이들이 자라나 어른이 되는 사회.
미래가 있을까?
4337년, 대한민국의 숙제다.
골빈 늙다리들의 애국을 가르치기 전에 사는 방법을 가르쳐라.
삶의 끝에 나올 답을 가르칠 생각을 하지 말고.
너희의 '대학'은 그 점에서 사회악이다.
같은 나이의 친구들이 취직을 하고, 취업전선에서 뛰며 완전히 아저씨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같은 나이에 벌써 40대같은 현실론자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절망한다. 어찌보면 우민화정책에 가깝다. '위'에 갈 수 있는 이들은 이런 이들의 땀을 보란듯이 비웃으며 밟고 서 있다. 그들의 카르텔, 그들의 이너서클, 그대들만의 떼한민국. 대학은 참 편리한 도구다. 서열을 나눠놓고는 그 서열이 당연하다며 비웃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입으로 자유를 논한다.
애들보기 부끄럽지 않니.
자식보기 부끄럽지 않니.
그렇게 살고 싶니. 이 '상삼류' 여러분.
학교. 특히 대학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옛 상처를 헤집는 기분이 들어 늘 괴롭다.
길게 썼지만 다 지워버리고…
모든 아이들이 대학 아니면 살 길 없게 만드는 게 과연 옳을까?
대학의 기능을 부정할 생각도 없고, 대학 생활도 해 볼만 하다는거야 맞지.
그러나 그게 전부가 된 다음이면?
'그거 대학 들어간 다음에 해도 돼'라는 표현은 그래서 무서운 거다.
'(상류) 대학입학'이라는 목표가 충족되지 않는 한 아이들은 미완성이요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외의 다른 기능, 다른 취향, 다른 취미… 아무것도 닦을 여력이 없다. 초등학생이 학원 서너 개 돌고 11시 넘어서 집에 들어오는 현실이 과연 바른 거냐고. 들어가놓고서도 여긴 아니라며 결국 다른 데를 다시 시험치기 위해 시간을 보내고. 그게 나쁘단 게 아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것만을 목표로 해야 하며, 그 최대 목표가 '상류대학'이 되어야 한다면. 나머지는 뭐가 될까? 열심히 노력하면 그리 될 수 있다는 허울 좋은 핑계다. 사실은, 세습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나머지 9할9푼을 예속시킬 수 있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 거야.
우리는 알면서도(혹은 눈을 가린 채로) 그 장단에 발맞춰나갈 수밖에 없는 거고.
이유는 역시 간단하다. 어른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남들 하는 만큼은 해야 한다!"
2.
…….
공부를 하고 싶다.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 이상도 목표도 있다.
그러나 내게 학교란 공간은 이를 이룰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으며 대학 또한 살아가며 거치는 것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바라보는 곳은 저 멀리 다른 곳에 있기에.
그렇기에 가라는 방향을 거부하고 싸웠으며 그 결과 지금의 내가 있다.
중고교시절 아버지께서는 '좋은 대학, 좋은 회사'를 강조하시는 전형적인 가부장 아버지셨다. 그 명령을 거부하며 바닥을 기어 온(지금도 기고 있는) 나는, 걱정과는 달리 나름대로 즐겁게 내 공부를 하며 살아간다. 최소한- 내겐 가고자 하는 길이 있고, 스스로 즐겁고, 불행하다 여기지 않는다. 또한, 심심하거나 할 것 없다며 투덜댈 여유조차 없다. 쌓아가는 만큼 남이 나를 필요로 하는 경우도 늘어난다. 향상심과 정열, 열정. 이게 나를 움직이는 동력원이자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 그 과정에서 상처도 많이 입었지만…. 뭐, 자수성가형 가부장적 아버지를 둔 맏이라면 대부분 비슷한 일을 겪을테니 그 자체가 대단한 건 아니겠지만. 이 불효자식은 거기에 반항했다.
좋은 대학이 아니었어도- 학창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어도-
가란 대로 가지 않아도- 이렇게도 갈 수 있구나. 갈 수 있었노라고.
어쩌면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 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탄핵 때도 이야기했지만.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내 길로 살아가는 방법을.
보이는 길 밖에도 세상은 있음을.
내 자식에게 알려주고 싶다.
내가 늘 힘들어 했던 건.
그런 걸 알려주는, 조언해주는 선배도 어른도 없었다는 것이었으니.
나는 그래서 어머니께 이리 말했었다.
"전 꼭 제가 만족하는 방향으로 성공해야 해요."
3.
세상은 다양한 사람이 있고,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
그 다양성을 어려서부터 짓밟혀 온 아이들이 자라나 어른이 되는 사회.
미래가 있을까?
4337년, 대한민국의 숙제다.
골빈 늙다리들의 애국을 가르치기 전에 사는 방법을 가르쳐라.
삶의 끝에 나올 답을 가르칠 생각을 하지 말고.
너희의 '대학'은 그 점에서 사회악이다.
같은 나이의 친구들이 취직을 하고, 취업전선에서 뛰며 완전히 아저씨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같은 나이에 벌써 40대같은 현실론자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절망한다. 어찌보면 우민화정책에 가깝다. '위'에 갈 수 있는 이들은 이런 이들의 땀을 보란듯이 비웃으며 밟고 서 있다. 그들의 카르텔, 그들의 이너서클, 그대들만의 떼한민국. 대학은 참 편리한 도구다. 서열을 나눠놓고는 그 서열이 당연하다며 비웃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입으로 자유를 논한다.
애들보기 부끄럽지 않니.
자식보기 부끄럽지 않니.
그렇게 살고 싶니. 이 '
# by | 2004/10/12 20:47 | 삶의 흔적들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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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신도 부모님의 그런 등쌀에 시달림을 겪어야 했죠. 일종의 통과의례라고나 할까... 만약 고교시절 역사 과목에 압도적인 성적을 보여내지 못했다면(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번듯한 학교, 번듯한 학과를 지원하라는 압력을 받았겠지요...
이제 학원에서 일을 하면서도, 가끔은 제 직업상의 본분을 잊고 원생들을 안쓰런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런 시선은 학부모 분과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어느 정도 반영이 되죠.. 그래도 부족함을 느낍니다. 현실을 고치기에는 한 사람의 힘으로는 부족함이 있고, 생계에 매달려야 하는 사람의 고민이 안 나올수도 없는 노릇이죠. 오늘로 중간고사 대비가 끝났습니다. 한 달 정도면 또 기말고사 대비에 시달리겠죠...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서 자기 길을 찾아서 최선을 다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넋두리일 뿐이겠지만... ㅜ,.ㅜ
쓰다보니 왠지 혼자 삽질한 기분이 들었을 뿐.
아직은 그노래가 맞는 시대.........꽤 오래됐음에도 말이지요.
씁쓸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