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깜짝깜짝 놀라는 말.

낫다 낳다 낮다의 혼동 정도는 사실 허탈하기도 하지만, 오류의 정도로 치자면 귀여운 축에 속한다. 기초 중의 기초를 틀리고 있는 거니까, 누군가가 한창 폼내고 있다가 저런 부분에서 틀리면 '에휴'라는 한숨만 한 번 쉴 뿐이다.

그렇지만 ∼하다만…의 경우는, 보고 있노라면 좀 성질이 날 때가 많다. 놀랍게도 글쟁이를 자처하는 이들조차도 곧잘 저지르는 터라 기가 막힐 뿐이지만.

존대하는 도중에 ∼하다만을 쓰면 그건 "님아 뭐하세요?"의 '님아'와 똑같은 꼴이 되고, 일기처럼 말을 놓고 쓰는 경우에도 그다지 바른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다만은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에게 할 때나 일종의 하대 표현 혹은 친밀한 관계에서 통용되는 말로, 보통은 ∼하지만 정도로 쓰면 그만이다.

> "글을 써주셔서 감사하다고 생각하다만 너무 길어요"
> "어차피 이쪽 이야기와 관련이 있긴 하다만 가능하면 자제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 "저도 많긴 하다만 개의치 않고 쓰는 편에 속하네요"
> "저도 헷갈리는거야 많긴 하다만요"

등등. ∼하긴 하지만으로 고치든지, 굳이 쓰고 싶다면 "∼합니다만" 등으로 적어주는 게 예의에 맞다. 공개 일기장에서 말을 놓는다 하더라도, 그건 읽는 이들과 자신을 동등한 1:1 관계로 놓고 쓰는거지 자신의 아래에다 놓고 쓰는 게 아니니 말이다.

내가 만약 "예외도 있긴 합니다만" 혹은 "예외도 있긴 하지만요" 정도로 써야 할 말을 "예외도 있긴 하다만"이라고 쓴다 하자. 상대가 내 후배이거나, 서로 자네라 부를 정도로 절친한 친구라면 문제가 안 되겠지. 그러나 내 손윗사람에게, 또는 불특정 다수에게 이런 표현을 쓰면 그건 예의도 상식도 없는 일이다. 이렇게 글자 하나 차이가 순식간에 상대의 기분을 잡치게 만들 수 있음을, 자신의 인상을 구길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경험상 하는 말이지만, 정작 내용은 부실한데 문장을 일부러 배배 꼬거나 어렵게 써서 뭔가 있어 보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일수록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 밑천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몰라서 썼든, 이러한 잘못 쓰이는 말은 의도하지 않았든 자신을 '그런 이들'과 같은 류로 보이게 만든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우리말, 정말 어렵다. 하지만 어려운 만큼 영어나 일어, 중국어보다 더욱 먼저 갈고 닦아야 한다. 이런 작은 부분에서부터 소홀히 하지 말자.

by 서찬휘 | 2004/07/24 03:57 | 삶의 흔적들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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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4/07/24 08:5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푸른웃음 at 2004/07/24 09:07
저런 상황에서 ~하다만을 쓰는 건 자기 스스로도 뭔가 어색하다고 느낄 것 같은데…. 아무튼 좋은 거 배우고 갑니다!
Commented by 소혼 at 2004/07/24 13:40
제가 자주 틀려먹던 부분이군요. 요새도 실수 안 했는지 점검해 봐야겠습니다.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4/07/24 23:19
....'하다만'이란 표현 자체를 안 씁니다 (다행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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