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그린 공각기동대 그림이 고교 교과서에 실리다(……) 애니 이야기

붕가붕가레코드 책 판매 촉진 사인회에 가기 위해 아가씨와 종각에서 만나기로 했었죠.
제가 조금 먼저 왔던지라 영풍문고에서 기다리고 있던 차에,
고등학생용 교과서를 좀 보았습니다.

일전의 역사부도도 그렇고, 알고 보면 고교 교과서가
볼게 참 많습니다. 그게 입시 따위를 위해서만 쓰이는 게 아까울 정도로.
입문자용으로는 훌륭한 수준인데다 가격도 무척이나 쌉니다!
300쪽이 넘는 책이 1400원 정도라니까요.
중고교생용 교과서들.
윤리사상에 이산수학에, 무려 심리학 같은 책도 있어요. 요즘 애들 별 걸 다 배우는구나 우와.
보다가 우연히 문법 책을 꺼내보았는데요.
보다가 뭔가가 이상했어요.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나온 문법 교과서 51쪽을 보면,
영화에 등장하는 말하는 로봇들의 모습이지만 현실적으로 영화에서처럼
자유자재로 말하고 말을 알아듣는 로봇을 개발하긴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자……라는 문제와 함께
스타워즈, 바이센테니얼 맨, 터미네이터, A.I., 가위손 그리고
공각기동대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공각기동대 그림을 보고 전 놀라서 책을 떨어뜨릴 뻔했습니다.
어…어라.
저거 말이죠. 1999년에 제가 제작했던 공각기동대 팬페이지 PROJECT2501의 대문 그림이에요.
…….
다시 말해서……
제가 10년 전에 그린 그림이란 말이죠. (……)

…….

푸웁.

으으으으으으으으음. 정말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군요.
허락 받고 말고 같은 건 생각이 안 듭니다. 어차피 이런 경우의 인용이야 용인되는 거고요.
오히려 상황 자체는 재밌어요. 이거 왜 이래 나 교과서에 자작 그림 실린 남자야? (……)

그치만- 저건 정식 일러스트가 아니라
그림은 아마추어 수준도 못 되는 일개 글쟁이가
그림에 미련을 못 버려서 한창 좀 연습해 보겠다고 깨작대다가
홈페이지 만들어야 한다고,
또 고집은 세서 스틸샷 몇 장 말고는 모두 내가 직접 해야 한다는 고집을 부린 나머지
없는 솜씨로 가까스로 그려서 홈페이지에 붙여놨던 '팬아트'에요.

이게 공식 일러스트나 장면 중 하나로 교과서에 소개됐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는 거란 말이죠…….

화가 나는 게 아니라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입니다.
우연히 들춰본 교과서에서 딱 보인 게 이거라니-
오늘은 이 녀석이 절 만나려고 작정한 날이었나 봐요.
오랜만이다, 모토코. 그리고 인형사.


당시 운영하던 팬페이지 모습.
작품 소개용 스틸샷 몇 장을 제외하면
모든 게 제가 쓴 글과 그림, 직접 디자인한 내용으로만 채워져 있었습니다.
대문 그림은 그야말로 삽질이었죠. 저거 채색 마우스로 한 거라니까요? (……)
아, 저땐 정말, 어떻게든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데셍 책 사서 연습도 하고.

우야든동.
이 때 이곳에서 공개했던 글이 제법 호평이었죠. 철학과 교수들이 공각기동대로 숙제를 내면
애들이 제 거 베껴간다고 줄줄이 신고(?)하던 진풍경도 있었고,
내용을 발췌했다던 어떤 책의 저자에게선 저서를 선물받기도 했었고.
씨네21 286호에 실린 오시이 마모루 인터뷰에 인터뷰어로 참여한 것도
알고 보면 이 홈페이지 내용 덕분이었습니다.
지금도 검색해 보면 여기서 발췌한 내용으로 쓴 레포트가 유료로 팔리는 모습도 보여요.
그런 걸 보면 20대 초반 때 참 별 짓을 다 했구나-란 생각도 듭니다.

재밌네요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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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핏빛 화성하늘 아래… : 서찬휘(SeoChanHwe)의 트위터 - 2009년 11월 09일 2009-11-10 19:56:18 #

    ... 그림은 10년 전에 직접 운영하던 공각기동대 팬페이지 Project2501의 대문으로 쓰인 쿠사나기 모토코+인형사 그림입니다. 51쪽이죠. http://seochnh.egloos.com/1966360 연락은 해 봐야겠죠. - 4:39 # 상대를 거꾸러뜨리는 데에서 희열을 느끼는 변태 같은 도장파괴범들은 '글'을 '읽지' 않고 '문자 ... more

덧글

  • Skyjet 2009/11/09 03:13 # 삭제 답글

    검정 교과서도 아니고 무려 국정 교과서에서 이런 짓을 저질렀단 말입니까? (…)
  • 미자 2009/11/09 05:10 # 삭제 답글

    공각기동대를 잘 모르는 사람이 책에 그림을 실었나 보네요. 실제 만화영화에 쓰인 그림으로 착각한 것 같죠. 이것만 실제 영화에 나오는 사진이 아닌 걸 보면.

    게다가 교과서라고 해도 저작권이 살아있는 작품을 실으면 계약하고 저작권료 지불할 텐데요. 적어도 허락은 받아야죠. 이걸 그냥 실은 걸 보면 나머지 사진들도 허락 없이 실은 것 같습니다. 아니면 ‘교과부’에서 낸 교과서는 저작권자의 허락이 필요없는 걸까요?

    어쩌면 서찬휘 씨 말고 전혀 엉뚱한 다른 사람이나 단체의 허락을 받고 (게다가 어쩌면 계약까지 하고) 서찬휘 씨의 그림을 실었는지도 모릅니다. 예전에 광고에 쓰인 동요 (아빠 힘내세요)가, 전혀 엉뚱한 사람에게 저작권료가 지불된 일이 있습니다. 진짜 그 동요를 만든 사람은 자기 동요가 광고에 쓰인 것도 나중에 알았고, 경위를 알아본 뒤에야 나중에 돈도 전체 중에서 일부만 받을 수 있었다고 했거든요. 저작권협회 실수였다는데, 신문 기사에 났었습니다.

    그러니까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니죠. 만약 이 경우라면 그냥 웃어넘기기엔.

    덧붙여, 달에 간 우주인 사진이 실린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가 떠오릅니다. 우주인 이름이 ‘루이’ 암스트롱이었어요. 친구들이랑 이런 거 찾는 재미도 쏠쏠했죠.
  • 서찬휘 2009/11/09 05:30 # 답글

    일단 책 뒤에 있는 사진자료 출처에는 공각기동대 포스터라고 적혀 있습니다.

    검색하면 줄줄 나오는 포스터는 어디다 두고 어쩌다 저게 올라갔는지는 정말 모를 일입니다. 일단 문의는 해야겠네요.
  • 서찬휘 2009/11/09 05:33 # 답글

    게다가 더 무서운 건 이게 2002년 초판이 찍힌 책이라는 거네요. 저 한창 대학 다니고 있던 그 시기, 제 후배뻘 되는 애들이 제 그림을 보고 공부했단 걸까요. 아멘. (……)
  • capcold 2009/11/09 06:43 # 답글

    !@#... "자유롭게 말하고 알아듣는" 로보트의 예로 뽑힌 작품들이란 것도 그다지 뭘 생각하고 골랐다는 느낌이 오지 않는군요. 스타워즈야 C-3PO가 통역로봇이니 그렇다쳐도, 나머지는 그냥 '인간보다 인간적 로봇' 테마를 다루고 있을 뿐(그것 또한, 터미네이터의 경우라면 T2를 했어야지 OTL) 딱히 언어와 뭔가 관련이 있는 것들이 아니라서. 오늘의 교훈: "모르는 분야면, 전문가의 자문을 받으란 말이다 쫌."
  • Kenis 2009/11/09 07:46 # 삭제 답글

    송구스럽게 잠깐 댓글을 남겨봅니다. 저작권법은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러한 저작자의 무분별한 권리행사로부터 사용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①저작권법에는 사용자의 권익보호를 위한 제한규정이 많은데, 그 중 제25조는 저작물의 학교교육 목적 등에의 이용행위에 대하여, 제28조는 저작물의 보도,비평,교육, 연구 등을 위한 인용에 대하여 저작권 행사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제25조와 제28조는 무상임은 물론 저작권자의 이용허락을 받지 않아도 저작물의 합법적인 이용이 가능합니다. 사실상 학교 교재를 만들면서 일일이 모든 저작권자의 허락을 맡거나 논문을 쓰면서 인용저작물의 저작권자에게 일일이 허락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그리고 그 목적이 교육이나 연구 등을 위한 것이라면 이는 상업적 목적이 아니라 향후 그 사용으로 인하여 문화의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제한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학원이 아닌) 고등학교, 중학교와 같은 학교의 교재에 저작물을 사용하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습니다(법 제25조 4항).

    ②더욱이 찬휘님의 그림은 2차적 저작물에 해당합니다. 1차적 저작물로부터 창작한 것이 2차적 저작물인데, 유명한 만화가 소설이 되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이 되기도 하고 게임이 되기도 할 때의 소설, 애니메이션, 게임이 2차적 저작물입니다. 또한 만화->변형한 만화와 같이 같은 종류의 창작물에 대해서도 2차적 저작물이 성립할 수 있습니다. 2차적 저작물을 합법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1차적 저작물의 저작권자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1차적 저작물은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가 되겠구요, 저작권자는 공각기동대의 감독이 될 것입니다(영상저작물의 경우 작화자가 아닌 감독이 저작권을 가집니다). 즉, 공각기동대의 감독은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가지는데, 감독으로부터 '2차적 저작물 작성권'에 기한 사용허락을 받은 경우에만 2차적 저작물을 상업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취미로 그리는 그림에 그와 같은 허락을 받지는 않겠지만, 상업적으로 판매하거나 금전적인 이익을 취하기 위해선 그렇게 해야 합니다.

    ①, ②와 같은 이유로 어찌되었든 현 상태에서 보상금을 청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저작재산권이구요, 저작인격권은 여전히 살펴볼 여지가 있습니다. 특히 동일성유지권이 문제되는데요, 저작물을 인용하면서 저작물의 제목을 다른 것으로 바꾸거나, 저작자의 성명을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바꾸거나, 저작물의 내용을 변형시키면 동일성유지권의 침해가 됩니다. 그러나 1차적 저작물의 명칭(공각기동대)이 적절하게 표시되었고, 저작권자의 이름이 표시된 것도 아니므로 동일성유지권의 침해는 아닙니다. 또한 1차적 저작권자(감독)의 이름도 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2차적 저작권자(찬휘님)의 이름을 따로 표시해달라고 하는 것도 무리일 듯 합니다. 다만 1차적 저작권자(감독)와 2차적 저작권자(찬휘님)의 이름을 같이 넣어달라고 요청할 수는 있을 것 같네요. 다만 그렇게 되면 1차적 저작권자와의 관계가 문제가 될 수 있겠습니다.


  • 알비레오 2009/11/09 08:30 # 답글

    여러가지 의미로 깨는군요. orz
    이거슨 대한민국 교과부 센스???
  • 밸리눈팅중 2009/11/09 10:33 # 삭제 답글

    저작권 행사가 힘든 걸 알기에 막쓴거 같긴 한데 팬아트를 ㅋㅋㅋㅋㅋ
    애니메이션 잘 모르시는 분이 '이 사진이 제일 멋있어!' 라고 생각하고 갖다 쓰셨나봐요 ㅎㅎㅎ
  • 서찬휘 2009/11/09 10:51 # 답글

    일단 연락을 했습니다.

    저는 딱 이렇게만 이야기했습니다. "그 자리에 들어가 있는 것은 내 그림이다. 공식 포스터나 스틸컷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일개 팬의 팬아트가 들어갔다. 무려 7년이나 내 후배들이 잘못된 도판을 보고 지나갔다는 것이다. 나는 적어도 내년에 이 책을 학생들부터는 그 자리에 공식 포스터 또는 스틸샷이 들어간 책을 받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게 들어가서 선생님께 해를 끼친 게 있습니까?"라고 너무나 순진무구하게(악의 없는 느낌) 묻는 담당자분을 보면서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잖아요-라고 답하려는 걸 꾹 참고 다시 설명을 하길 몇 차례. 어쨌든 처리 결과를 알려주기로 했습니다. 이젠 기다려 봐야죠.

    위에 길게 써 주신 분이 계신데 그런 걸 원해서 문제삼는 게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게 교과서고, 공식적인 화상이 소개가 되어야 할 자리란 것이고 그곳에 팬아트가 들어갔으니 적어도 내년에 볼 아이들부터라도 바로 잡아달라는 것, 그 뿐이에요.
  • Kenis 2009/11/09 11:10 # 삭제 답글

    아, 그렇군요.. 어쨌든 잘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 이리 2009/11/09 12:06 # 삭제 답글

    엄청나군요. 일단 저 책은 기념으로 사셔야..
  • 김우측 2009/11/09 12:34 # 답글

    저작권법의 무서움을 몸으로 느끼게 해주셔요~
  • blakparade 2009/11/09 13:41 # 답글

    저도 지금 저 문법교과서 쓰고있는데...저 그림 보고는 그냥 넘겼는데,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 GaraM 2009/11/09 17:01 # 삭제 답글

    다른 곳도 아니고... 국정교과서에 실리다니...;;;
    완전... 2MB 정부의 이중성을 말해주고 있네요... 쿨럭쿨럭

    부디 이번 교과서 건... 잘 풀리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 충격 2009/11/09 18:39 #

    7년 된 책이라고 하시는데 2MB 정부가 왜 나옵니까?
    그리고 애초에 저건 저작권법에서 정당한 인용으로서 인정되는 부분이니,
    이중성 어쩌고가 나올 필요조차 없습니다.
  • T-Bell 2009/11/10 00:48 # 답글

    300쪽 1400원!!

    세상 모든 책 값이 교과서 같으면 참 좋을 것 같네요..orz
  • the killers 2009/11/13 12:46 # 답글

    자료수집으로는 교과서도 괜찮겠군요ㅎㅎ(왜 이생각을 못했지???ㅠㅠ)황당하셨겠네요. 출판사도 저작권관련으로 공격을 많이 받다보니 본의아니게 습관적 방어태세에 일관, 교수님 말씀을 본질적으로 이해를 못하고있던게 아닌지요 ㅋㅋ
  • amy11th 2009/11/21 21:43 # 삭제 답글

    어머어머 저도 저 문법 교과서에서 저 그림 봤던거 똑똑히 기억해요!
    여섯개 중에 공각기동대만 안 본거라 고등학교때 꼭 저걸 봐야겠구나 한지가 언젠데~
    오늘에서야 보고 이 글도 보네요
    뭔가 감개무량 ㅎㅎ
    저 그림이 소찬휘님꺼였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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