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나는 올해로 서른이 됐지만, 생일이 안 지났으니 아직 만으로 스물여덟. 20대라 구라를 치고 20대로서 느끼는 요즘 상황을 한 마디로만 정리해 보자면.

'부끄럽다'다. 누구한테? 지금 내 뒤를 따라오고 있는 10대한테.
진짜로 낯부끄러워 죽겠다. 최소한 쟤들은 자기들이 직접 움직였다. 빠순이들까지도.
군중심리네 휘둘렸네 총알받이네 하며 다들 웃기고 계시긴 하지만.
(난 이번 일로 10대들의 에너지를 보며 10대도 20대와 마찬가지로 자조에 빠져 있을 거라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요즘 20대 비판 이야기가 나오니 20대들이 온갖 수사와 논리를 들며 '멋들어진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문장력들 참 좋다. 그동안 다들 어디들 있었는지.

근데 심정적으로 이해는 하는데 도무지 목구멍에 딱 걸린 듯한 이 느낌은 대체 뭘까. 아마도 그 글들 태반의 논조가 "그러는 너네들은?"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근데 그들의 '분노'가 '선빵 날린 자를 향한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라 보기엔 지난해와 올해 정치를 통해 드러난 젊은 세대들의 모습에서 역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 난감하고 서글프다. 1)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는 건 우리 윗세대가 우리에게 보여준 게 없기 때문이야. 2) 그러니 우리가 이러고 있는 건 틀린 건 아니지. 3) 꼰대새끼들도 싫지만 바로 선배 새끼들이라고 다를 게 있냐. 4) 난 하란 대로 했을 뿐인데 현실이 시궁창이네.

…….

내가 옳다고만 할 생각도 없고, 어차피 난 정규 코스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며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 하지만 덕분에 '남들 다 가는 길'을 그대로 걷고 있는 젊은 세대들의 모습을 한 발 떨어져서 볼 수는 있다. 그런 견지에서 말하자면.

1) 윗세대 욕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세대란 낱말이 있는 한 불평과 갈등이 없을 순 없다.
2) 자신이 왜 살아 있고 어떻게 살아 있으며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관한 고민은 누가 시켜야만, 가르쳐줘야만 하는 게 아니다.
3) 한 세대는 고작 아래 세대가 인정하고 자시고 할 문제가 아니다. 틀려보이면 극복하면 그만이지.
4) 상황에 순응하는 것도 자기 자신이고 그에 대응하는 것도 자기 자신.
5) 드러난 결과에 '변명'해야 할 행동은 않는 게 맞다.
6) 너네 민증 나온 어른이라니깐. 성인이야. 투표권도 있어.

결국 모든 화두에서 중요한 건 '나'란 게 있는가, 또 '나 나름대로'가 가능한가다. 이 화두에서 어물쩍거리거나 다른 세대 이야기가 나온다면 그 사람의 말은 잘못된 거다. 판이 어떻게 됐든 살아가는 건 나니까. 내 경우는 하란대로 하는 삶 자체에 염증을 내는 타입이어서 결국 내 맘대로 갔다. 윗세대? 죽어라 욕했지 물론. 그치만 당신들은 어땠는데?에서 딱 그치진 않았거든.

……게다가 언론들에서 실패한 386, 실패한 386 어쩌구 하니까 꽤나 우스워보였는 모양인데, 연대 사태쯤 되었을 때엔 운동권들도 꽤나 맛이 가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이전 88년 이전에 도로 위로 뛰어 나왔던 그 사람들은 그 자체로 역사였다. 이 말의 무게가 우스워보이거나 감이 안 잡힌다면, 미안하지만 그 사람에겐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다. 이 나라가 왕정으로 돌아가거나 MB가 미쳐서 이승만 때나 박정희 때로 이 나라가 돌아가면 차라리 편하겠지. '생각'이란 걸 할 필요가 없어질 테니까.

게다가 단순히 우리 위를 세대론으로 구분지어서 욕하는 게 위험한 것 중 하나가… 당시 분노하여 항의했던 그 세대와 동년배나 바로 윗세대라 할 수 있었던 이들 중에도 그들에게 혀를 차고 동조하지 않았으면서 이제 와서 동갑내기뻘 되는 그들을 증오하는 이들이 있다는 거다. '그 때 나는 열심히 하란대로 열심히 일했고 열심히 회사다녔는데, 지금은 명퇴당하고 뭐고 뭐고 뭐고 한 상황이다. 근데 저새끼들은 돌 던진 거 밖에 없는데 국회의원도 되고 잘 살고 있다. 대통령조차 그 꼴이네. 이건 말도 안 된다'라는 말도 안 되는 증오가 하늘을 찌르는 거다.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지 않나? 지금 20대들이 386이란 이들더러 하는 소리랑 똑같다.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이지 않거나 심정적 동조도 아니 역사 의식도 이만큼도 안 가지고 오히려 바보 취급을 했던 이들이, 그들이 바꾼 세상의 흠집을 잡아 욕을 한다? 정작 MB 되니까 386 욕할 때가 아니라는 현실이 눈 앞에서 떡하니 드러나지 않는가. 아마 좀 있으면 그렇게 욕해댔던 그 세대가 재조명되겠지. 그 흐름조차도 개그 같지만 또 현실이겠지.

이런 건 누가 문제니까 어떻게 됐다는 인과를 억지로 꿰 맞출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현실을 어떻게 바라봤는가의 문제다. 아니, 바라볼 수는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기도 하겠지. 세대가 문제라기보다도 단지 어떻게 사는가의 문제라고. 그건 지금의 우리에게도 똑같이 통용된다. 수십년 쌓인 증오와 비아냥에서 악취가 나듯이, 벌써부터 택도 없는 헛논리로 증오를 쌓아가고 있으면- 자기가 꼰대 나이가 됐을 때 그 독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넌 뭐 평생 어린애일 거 같아? 원.


분명 지금 20대들은 곧 이어 자기 자리로 올라올 10대들에게 비웃음을 살 것이다. 지금의 절망은 차라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면서 꼰대가 된 씹쌔들에게 듣는 개소리 정도로 치부하면 그만일지도 몰라도, 움직여야 할 때 한심하게 손 놓고 있었다는 사실로 지금 자기 자신들이 내뱉었던 소리를 똑같이 들었을 때 대체 어떻게 반응할지 좀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러니 논리적으로 '반박'을 하기 이전에… 아니, 사실 난 논설 식으로 쿨한 척 시니컬한 듯 시건방진 어투로 씨부리는 거 무지 안 좋아하니까 걍 쓰자. 좀 대인배가 되는 건 어떨까? 욕 먹었다고 바로 정색하고 이러쿵저러쿵 보다는 "난 이만큼 참여하고 살고 있으니까 나름대로 할 말은 있어"하고 웃어 넘기는 편이 차라리 나아 보인다. 그 편이 뒷세대들에게도 나아 보일 거고. 바로 윗세대들에게서 배운 게 없다고 해도, 그 정도로들 논리적이고 머리가 좋다면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하면 멋져 보이는 것'은 알 수 있을 테니까 자기가 그 모습을 만들면 되잖나? 왜 거기서 "너네라고 잘났냐" 식의 반응이 나와야 하나. 지금까지 드러난 결과만으로 보면 낯부끄럽고 병신같고 개같은 꼴 나온 거, 맞는 걸. 물론 30대 초중반까지도 매일반이긴 하다. 386은 지금 30대 후반에서 40대로 올라가 있고, 지금 30대 초중반은 그냥 20대랑 같이 혼 나는 게 당연하다. 욕먹어 싸다니깐. 생각도 행동도 없고 핑계에 논리에 악다구니만 남은 바보들이라서. 그래도 난 당연히 내게도 쏟아지는 그 비웃음 앞에 '내 행동 내 삶'으로 증명해갈 뿐이지. 그러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


흔히 이런 설정이 있다. 누가 뭐라고 했을 때, 자기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거나 콤플렉스로 안고 있는 사람의 반응과 그걸 나름대로 극복한 사람의 반응. 지금의 반응들은, 과연 어느 쪽일까?

최소한 난 지금 10대들에게 '역사의 의미와 행동해야 할 때란 무엇인지'를 눈 앞에서 보여주는 선배로 기억되고 싶거든. 누가 가르쳐주긴 커녕, 좌빨 빨갱이 소리를 다른 누구도 아니고 지금 50대 어른한테 들어가면서 자란 놈이지만 말야. 저 비난 속에 숨은 칼날을 그대로 물려 받아 휘두르는 못난이는 안 될 거다. 지금 20대 여러분들은 어떠신지.




그나저나 난 어떤 사안에 관해 '토론'한다면서 지나치게 '정색'하고 '논리' 들이대며 '치받는' 모양새가 참 안 좋아 보인다. 토론 문화가 없는 나라에서 저러는 건 한편으론 대단하고 멋져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런 정도 사안 정도로 저렇게까지 칼 갈아야 하나 싶을 때가 많아서. 뭐, 토론의 토 자만 봐도 토 나오는 지경인 내 관점에서의 이야기지만.

다만 저리 멋지게 굴면서들 필요할 때 안 움직이면 곤란하단 게지.

물론 온갖 데를 쫓아다니면서 내 경험으로는 어땠는데하는 꼰대도 되지 말아야겠지만. 그런 놈 치고 꼰대 소리 안 듣기도 어렵거니와 오래 남지도 못해요. 얼치기라도 알아서 오래 살아남는 쪽이 정의지.

씨발 무써~운 아저씨들 몰려와서 집안에 딱지 붙이는 경험 해 봤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끝난 건 아니더라고?




…근데 다 집어치우고.

투표조차도 안 했잖아?라는 한 마디에 중언부언 변명하는 놈들이 워낙 많으니까.
으르렁컹컹왈왈 하기 전에 이것만은 알아주면 좋겠다. 이런 대목에서 말해야 할 건 변명이 아니라 "잘못했다"다.

by 서찬휘 | 2008/05/10 15:13 | 세상 바라보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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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서찬휘 at 2008/05/10 15:49 #
근데 레몬펜이 하나 달리긴 했는데 내용이 없네. 이거 내가 못 보고 있는 건가?
Commented by 젠카 at 2008/05/10 20:49 #
어느덧 20대도 꺾인 저는 20대 옹호에도 안쓰럽게 공감이 되면서도 20대를 욕하는 글에도 나름 고개를 끄덕이는 애매한 심정입니다. 레몬펜에는 저도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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