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08일
저녁노을

아침노을과 저녁노을 중 어느 쪽이 좋냐고 물으면 나는 단연 아침노을이라 말한다. 꽤 옛날이지만, 천안에서 마감 중에 방에까지 젖어들어온 핏빛을 보고 화들짝 놀라 창밖을 바라본 적이 있다. 불과 몇 분 사이에 사라지는 광경이었고 사진기도 없어 남겨놓을 수 없었지만 그야말로 환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핏빛 노을이었다. 저녁노을에서는 볼 수 없는 신묘한 색상에 나는 넋을 잃고 말았더랬지. 이후 그런 노을은 딱 한 번 더 보긴 했지만 역시 사진에 담을 수는 없었다. 대신 못 참고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가 죽어라 내달렸지. 노을을 향해.
가기 편해졌다 어쩐다 해도 천안도 변두리 쪽으로 가면 여전히 한적함이 살아 있어서 아침해가 뜰 무렵이면 산기슭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사악 밀려들어온다. 밤을 보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그 상쾌함은 고단함과 괴로움, 외로움을 한순간 씻겨줄만큼 매력적이다. 서울에 와선 한 번도 느낄 수 없었지만. 이 아침을 알리는 바람의 맛, 그리고 2~3년에 한 번 볼 수 있을까 말까 한 최상의 아침노을은 아마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향수로 남을 것 같다.
비록 아침노을은 아니지만 엊그제 본 저녁노을이 눈에 들어와 한 장 찍어보았다. 저녁노을을 보며 아침노을을 그리워하는 건 저녁노을에게 실례인 거 같지만.
이렇게 말하면 고어 같은 인상이지만 역시 '핏빛'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그 색깔이 좋다. 세상 만물을 다 물들일 것만 같은 그 색깔은 정말 멋있었다.
……우와, 나 역시 사고 치면 안 되겠다. 행여라도 사고라도 내면 '서 모 씨 블로그에 고어 마니아적 습성 보여' 따위가 실릴 게 뻔하잖아. (……) 그치만 저런 저녁노을은 색이 너무 누런 느낌이어서 아쉽다고오오.
감성적인 분위기 깨서 좀 그렇긴 하지만 저거 한 구석에다가 光자 하나 붙이면 꽤 잘 어울릴 거 같네.
# by | 2008/05/08 04:40 | 사진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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