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07일
일본 여행기 - 4월 20일 (2) 교토국제망가뮤지엄, 태양루

실종사고로 한바탕 난리를 겪고 나니 시간이 빠듯해 나머지 일정 중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래서 결국 절충안으로 킨카쿠지와 같은 ‘절’보다는 학생들 전공에 맞춰서 박물관을 보는 편이 나을 거란 결론이 났죠. 주말이다 보니 쿄토에서 오오사카로 가는 길이 막힐 게 뻔해서 가급적 일찍 움직여야 한다는 문제도 있었고요. 전철이 아니라 버스로 이동하다 보니 이런 문제까지 감안을 해야 하더군요.
어쨌거나 그래서 쿄토국제망가뮤지엄(京都国際マンガミュージアム)으로 갔습니다.



일본 만화의 여명기라 할 수 있었던 막부 말기와 메이지 유신 초기,
희화·만화의 선두주자로 활약한 카와나베 쿄사이(河鍋暁斎)의 작품세계를 볼 수 있는
쿄사이만화전(暁斎漫画展)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사실 쿄토국제망가뮤지엄-이라고 해도 “일본엔 만화 박물관이 있어!”라고 부러워할 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부천에부천만화정보센터와 한국만화박물관이 있거든요. 도서관도 있죠. 돌아보니 성격도 제법 엇비슷합니다. 전시회를 끊임없이 열고 있고,책도 잔뜩 있고. 뭐 이것저것 파는 거라든지 등은 이쪽이 좀 더 나아보이긴 하더랍니다만. 학교 건물을 이용한 거여서 곳곳에옛날엔 여기가 학교의 뭐였네 하는 안내가 붙어 있었습니다. 전시장 안쪽은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해서 아쉽게도 안쪽 사진은 없습니다. 입장 직전에 찍은 사진 몇 장이 있긴 합니다만.



흔쾌히 촬영 허락을 해 줬던 판매원 아주머니.
그러나 포즈 취할 새도 없이 다른 손님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그냥 이렇게만.
일정 하나를 뺀 덕분에 여기서 제법 긴 시간을 죽치게 됐습니다만 그렇다고 사실 여기가 아주아주 볼거리가 많았던 건 아니죠. 덕분에 다들 좀 늘어진 느낌으로 시간을 때운 인상이 강했…습니다만, 그래도 공부하는 기분으로 전시를 본 사람은 뭔가 얻어갈 수 있었을 겁니다.
길목, 층층마다 장서가 몇 만 권 단위라고 하는 것 같던데, 남녀노소 와서 책을 꺼내볼 수 있게 해 놓은 건 좋지만 정리 기준이 뭘까 좀 의심스러울 만큼 중구난방으로 꽂혀 있는 건 좀 아쉽더군요. 지하에 옛 잡지를 습도 온도 조절해가며 보관중인 서고가 있는 게 이채로웠고요. 만화가들의 작업 풍경을 실연하는 자리도 있었는데 실제 원고 작업을 하는 건가 하고 신기해 했더니만 알고 보니 사람이 앞에 있을 때만 작업하고 없을 땐 그냥 쉬는 모양이더군요. 어시스턴트 출신들이려나 싶었습니다.
이밖에 전진석 작가님은 캐리커쳐를 1천 엔 주고 그리셨는데 너무 순하게 나왔고, 여학생들 중 일부는 캐릭터 상품 몇 개를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덴덴타운이 기다리고 있는데 벌써 낚이다니-싶긴 했지만 하루히 그림은 예쁘긴 예쁘더군요. 여자애들이 하루히 그림을 보며 좋아하는 걸 보니 모에로 하나되는 세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옴모에니반메훔.
이 박물관은 옛날에 학교이던 곳을 우리나라에도 카툰 계열로 많이 알려진 쿄토세이카대학에서 활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덕분에 자체 기획 전시, 국제카툰전 등이 꽤 활발하게 이뤄지고 이전 전시의 회고전 등도 열리고 있더군요. 책을 빌려다가 건물 앞 공터로 들고 나가 읽을 수 있다는 것도 꽤 이채로웠고요. 신기할 거야 없었지만.
개중에 기억에 남는 건 역시 자기들 ‘망가’와 프랑스어권에서 만화를 일컫는 ‘BD(베데 : 방드 데시네)’의 차이에 관해 제법 넓은 자리를 할애해 기술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칼라 대 흑백, 제작 비용이 비싼가 싼가, 작가 자신이 중심이 되는가 편집부와 전문 편집자의 손길을 통하는가 등의 차이가 나열돼 있었습니다. 우열을 가리자는 게 아니라 그냥 담담하게 해 놓은게 좋더군요. 으레 이런 데에선 우리가 위야~라고 하기 쉬운데. 5월에 ‘망가 VS BD’란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다는데 이거 누가 좀 자료를 건네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밌을 거 같아요.
또 1층 벽장에 세계 각국의 만화책들을 가져다 놓고 각국 만화의 특성을 소개해놓은 것도 볼거리였습니다. 한국만화의 현 지점에 관해서도 소개하고 있었는데요. 한국 만화는 일본과 달리 잡지 만화가 만화 시장의 중심이던 때가 90년대였고 그 이전엔 신문 만화가 중심이었으며 지금은 온라인 만화가 중심이고 그 흐름을 독자적으로 끌어가고 있다는 식으로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럭저럭 잘 정리해놨더군요. 근데 전시된 작품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게 김성모 씨의 「대털」인 걸 보면서 여러 의미로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휴일이라선지 원래 그런 건지 코스튬 플레이어들이 많았던 것도 이 공간에서의 볼거리였죠. 참 많기도 했습니다. 햇빛 잘 드는 잔디밭에서 알아서들 잘 놀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전시장보다도 그게 부럽더군요.

우리나라 코스튬 플레이어들은 자리도 마땅찮은데다 어린애들이 사고를 하도 쳐 대서 만화 행사에서나 비 만화인들 사이에서도 비웃음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건만. 이런 놀 자리가 도시 안에 있다니 꽤 좋아 보입니다. 정작 전 몇몇 분장은 알아보질 못하겠더라고요. 여기서 조금 띠잉-해서 취향 아니라도 좀 더 최근 걸 더 부지런히 챙겨봐야겠다는 자극을 받았습니다. 딴에는 많이 보는 편이건만 말이죠.





하도 작은 녀석이 잘도 통통통통 뛰어다니길래 귀여워서
“아가씨(무려 오죠상~!),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라고 물었더랬죠.
근데 보통 이 나이 애들이라면 부끄러워하거나 머뭇거리기라도 할 것 같았는데
얘는 그것도 아니고 매우 똘망똘망하게 “네!”라고 답하더니 바로 포즈를 척하니 취하더라고요.
놀랐습니다. 너 크게 되겠구나. 아니, 가정교육 잘 받았구나.
너네 부모님도 훌륭한 덕후겠구나. 그러쿠나 무써운 꾸믈 꾸어쿠나. (……)
이외에도 하루히 등이 있었는데 차마 사진을 찍진 못…아니 않았습니다. 아, 무서웠어요. 여러모로. (……) 코스튬 플레이어는 아니었지만 한복판에서 정좌를 하고 만화책을 ‘정중히’ 읽고 있던 꼬마 아가씨가 기억에 남습니다. 차마 꼬마 아가씨 오빠가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하고 묻질 못하겠더군요. 우씨.
어쨌거나 기왕 시간도 남은 거 쉬는 기분으로 모여앉아 잡담도 하고, 사진도 찍고, 몇몇 학생들은 그 사이에 크로키나 스케치를 하기도 하고… 넘치는 혈기를 주체 못한 친구들은 뛰어도 다니고 하면서 놀았네요. 와중에 기억에 강하게 남은 거라면 역시 1학년 인미 학생이 호장 학생에게 시전한 헥토파스칼 킥. 강렬했습니다. 네. 역시 발차기는 넓은 장소에서 내질러야 제맛이라니까요.
떠날 때쯤 되니까 다시금 드는 생각이었지만, 부천하고 계속 비교를 해볼 수밖에 없는 곳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부천은 전용 공간이 아니라 도서관하고 운영팀, 박물관이 각기 다른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2010년 완공 예정인 한국만화영상산업진흥원이 열리면 좀 더 나으려나 싶습니다.

박물관을 나와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려 숙소가 있는 오오사카로 향했습니다. 가이드 누님이 설명해준 도자기칼 제작업체인 ‘쿄세라’ 빌딩을 본 거랑, 일본 도로는 제법 좁구나 하는 생각이랑, 다음에 일본에 오면 볼만한 곳으로 큐슈를 추천받았다는 거 정도가 기억에 남네요.
오오사카에 왔다고 바로 숙소로 간 건 아니었습니다. 저녁식사가 남아 있었죠. 뷔페라고 해서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는 쪽인 저는 속으로 앗싸 좋구나 소리를 질렀습니다만…….


한큐 백화점 등 대형 상권을 비롯해 JR오오사카역 등이 몰려 있는 중심지 우메다에 있는 ‘한방 약냄비 바이킹 태양루’. 뭐랄까. 맛은 있었어요. 괜찮았어요. 배부르게 잘 먹었죠. 근데 역시 막 가져다 먹는 걸 기대했던 저로서는 약간 아쉬웠다고 할까요. 그렇습니다. 시간도 짧았고요. 저녁식사는 남기면 2천엔 벌금이라고 했더니 몇몇 학생들은 막판에 아구아구 몰아넣느라 고생 좀 하더군요.
정작 음식보다도 기억에 남는 건 마지막에 입가심으로 먹은 칼피스! 이후 일본 여행 일정 내내 오후의 홍차 밀크티와 함께 수도 없이 들이킨 음료수 되겠습니다. (……) 아, 맛들리고 말았어 어쩌면 좋아.

회전관람차 같은 건 커플끼리 들어가서 콩닥하악대면 그만인 곳이지
혼자나 남자끼리 가선 매우 볼썽사나우니 패스.

이렇게 곱게 넘어가나 했더니만, 버스가 출발하려는 찰나 학생 하나가 물건 놓고 왔다고 울상으로 뛰어나왔더군요. 덕분에 또 한 번 지연됐네요.
우메다에는 이틀 뒤 저녁에 다시 오게 되는데 그건 그날 여행기에서 적도록 하지요. 여하간 이렇게 하여, 다시 버스를 타고 오늘의 최종 목적지라 할 수 있는 니혼바시의 난바워싱턴호텔플라자로.
(계속)
.................
보태기 하나.
쿄토국제망가뮤지엄 누리집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www.kyotomm.com/
보태기 둘.
이날 제일 많이 입에 올린 건 “사진 찍어도 되겠습니까?”
# by | 2008/05/07 08:07 | 여행 | 트랙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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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저는 작년에 갔을 때 깜박하고 전시된 것을 못봐서 아직도 사진 밖에는 구경을 못하고 있는데, 저보다 먼저 보셨군요.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