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24일
MP3와 DRM과 음질과 시장
확실히 저도 쥬크온에서 MP3 내려받으려고 할 때 DRM이 걸려 있으면 사기가 싫어요. 안타까운 일이죠.
MP3가 CD음질과 맞먹는다는 소리도 사실 말이 안 되는 것이, MP3를 들을 때엔 어지간해선 불평 않는 저도 가끔 MP3가 날려먹는 미묘한 공간감의 차이 때문에 답답할 때가 많아요. OGG라고 다를 건 없고. 하지만 이미 어떤 '매체'(CD 등)에 콘텐트를 담아 판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있는 요즘에 와선 무조건 CD를 사라고 하는 것도 답이 아니거니와 MP3나 OGG에서 음질을 찾는 것도 무의미하단 생각도 들거든요. 인스턴트 커피나 티백 녹차에서 원두나 우전차의 깊은 맛을 찾으려 드는 것만큼이나 말이죠.
원론적인 이야기겠지만 음악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CD를 사거나 감상실을 찾거나, 공연장을 쫓아다니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미 시대는 제대로 즐긴다기보다는 골라서 적당히 듣고 싶어하는 이들이 주류가 됐고 이 점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선택할 방향이 달라지는 거겠죠. 이를테면 만화가 안 팔리는 이유가 만화만의 문제라기보다 애초에 책을 안 사는 풍조에도 어느 정도 이유가 있듯이. 음악 또한 진지하게 좋아하는 곡이나 뮤지션의 자취를 찾아 듣는 그런 때는 지났다는 겁니다. 기분이 많이 안 좋은 이야기일 수 있어도, 이미 만화도 음악도 소모품이 됐을 뿐인 거죠. 한국 만화, 한국 음악에 보고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어설픈 애송이들은 차치하더라도 말이죠.
음악만 놓고 보자면, 휴대전화 벨소리나 컬러링에서 들으면 그만인 것으로 '전락'한 겁니다. 더 이상의 의미를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음악을 좋아하는 소수는 CD를 사고 라디오를 듣고 감상실을 가고 공연장을 가고. 캔커피처럼 마시고 버리면 그만이라 여기는 절대 다수는 살 생각도 없이 MP3를 어디선가 내려받으면서 가치를 논합니다. 어찌 보면 슬퍼하고 노여워할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은 캔커피가 나쁜 게 아니라 캔커피에다 원두의 맛을 요구하는 머저리들이 목소리만 큰 게 문제잖아요? MP3 때문에 음반시장이 줄은 건 사실이죠. 음악 시장 자체가 죽었다고 할 순 없지만 '음반'이 줄어든 건 맞잖아요. 입맛들이 싸구려로 변했을 뿐이고 싸구려가 나쁜 것만도 아니죠. 다 우아할 순 없거니와 대중의 속성이 그렇지도 않습니다. 적당히 저열하고 적당히 유치한 게 대중이니까요. 그럼 차라리 캔커피 시장과 별도로 원두 시장을 개척하고 커피프린스 같은 양념을 붙여서 상품을 개발하는 쪽이 낫지 않겠습니까. 이제 와서 CD 구입만이 음악 사랑이라고 이야기하긴 어렵잖아요. 물론, 불법스캔 만큼이나 불법 내려받기는 사랑이 아니라 저주기는 하지만. 요는 제한을 풀어서 만들 수 있는 시장을 고민할 시점이라는 겁니다.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유튜브 스타일의 배포형 플레이어? 광고 탑재형 MP3? 상시 공연? 라디오헤드가 선보인 대인배 기질?
만화도 음악도 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 과연 시대 흐름을 어떻게 납득하고 또 어떻게 다른 시장을 풀어 나갈 것인가의 문제로 보자면 지금은 그 시장의 성격을 규정하는 극히 원론적인 부분에서 감정싸움만을 반복하는 기분입니다. 모르겠어요. 실제로 돈이 오가는 것이 시장이라는 거야 당연하지만 포스트 모더니즘의 흐름 그 자체가 아닌가 생각할만큼 파편화에 해체에 개박살을 조류로 삼고 있는 요즘 시대에선 그 자체도 뭔 의미인가 싶기도 하고. 분명한 건 그 모순되고 역설적으로 보이는 부분을 잘 잡아내는 이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돈을 벌 거라는 사실입니다. 누가 그 역할 모델을 만들어 낼까요.
서태지 씨나 신해철 씨 같은 괴짜분들이 이럴 때 사고 한 번 쳐 주면 좋으련만 말입니다.
* 결국 만화에도 같은 질문과 고민이 돌아갑니다. 과연 그 역할 모델을 누가 만들 수 있을까요? 지금 태반은 포털에만 목을 매답니다. 포털 중심의 웹 만화 구조도 앞으로 고작 1~2년이 한계선이 될 것임을 보자면 지금 그쪽만을 바라보며 입 벌리고 있는 작가들은 오래지 않아 또 한 번 배신감 내지는 좌절감을 느끼고 말겠죠. 포털은 시장이 아니거든요. 기회의 땅 역할극을 해 줬을 뿐. 관건은 다시 돌아와서, 어떻게 '시장'을 만들 것인가입니다.
정책적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기업 단위에서 사고를 쳐서 돈 버는 결과물을 내 줘야 하고 그 흐름의 주체는 온/오프를 아울러야 합니다. 그리고 단지 만화만으로만 접근하는 것 또한 순진한 발상입니다. 그럼 과연 어떤 방식이 있을까요. 현재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 어느 정도 진척이 되면 다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게 고개를 까딱거린 기회들이 답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을지 아닐지. 저 또한 궁금해요.
MP3가 CD음질과 맞먹는다는 소리도 사실 말이 안 되는 것이, MP3를 들을 때엔 어지간해선 불평 않는 저도 가끔 MP3가 날려먹는 미묘한 공간감의 차이 때문에 답답할 때가 많아요. OGG라고 다를 건 없고. 하지만 이미 어떤 '매체'(CD 등)에 콘텐트를 담아 판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있는 요즘에 와선 무조건 CD를 사라고 하는 것도 답이 아니거니와 MP3나 OGG에서 음질을 찾는 것도 무의미하단 생각도 들거든요. 인스턴트 커피나 티백 녹차에서 원두나 우전차의 깊은 맛을 찾으려 드는 것만큼이나 말이죠.
원론적인 이야기겠지만 음악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CD를 사거나 감상실을 찾거나, 공연장을 쫓아다니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미 시대는 제대로 즐긴다기보다는 골라서 적당히 듣고 싶어하는 이들이 주류가 됐고 이 점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선택할 방향이 달라지는 거겠죠. 이를테면 만화가 안 팔리는 이유가 만화만의 문제라기보다 애초에 책을 안 사는 풍조에도 어느 정도 이유가 있듯이. 음악 또한 진지하게 좋아하는 곡이나 뮤지션의 자취를 찾아 듣는 그런 때는 지났다는 겁니다. 기분이 많이 안 좋은 이야기일 수 있어도, 이미 만화도 음악도 소모품이 됐을 뿐인 거죠. 한국 만화, 한국 음악에 보고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어설픈 애송이들은 차치하더라도 말이죠.
음악만 놓고 보자면, 휴대전화 벨소리나 컬러링에서 들으면 그만인 것으로 '전락'한 겁니다. 더 이상의 의미를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음악을 좋아하는 소수는 CD를 사고 라디오를 듣고 감상실을 가고 공연장을 가고. 캔커피처럼 마시고 버리면 그만이라 여기는 절대 다수는 살 생각도 없이 MP3를 어디선가 내려받으면서 가치를 논합니다. 어찌 보면 슬퍼하고 노여워할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은 캔커피가 나쁜 게 아니라 캔커피에다 원두의 맛을 요구하는 머저리들이 목소리만 큰 게 문제잖아요? MP3 때문에 음반시장이 줄은 건 사실이죠. 음악 시장 자체가 죽었다고 할 순 없지만 '음반'이 줄어든 건 맞잖아요. 입맛들이 싸구려로 변했을 뿐이고 싸구려가 나쁜 것만도 아니죠. 다 우아할 순 없거니와 대중의 속성이 그렇지도 않습니다. 적당히 저열하고 적당히 유치한 게 대중이니까요. 그럼 차라리 캔커피 시장과 별도로 원두 시장을 개척하고 커피프린스 같은 양념을 붙여서 상품을 개발하는 쪽이 낫지 않겠습니까. 이제 와서 CD 구입만이 음악 사랑이라고 이야기하긴 어렵잖아요. 물론, 불법스캔 만큼이나 불법 내려받기는 사랑이 아니라 저주기는 하지만. 요는 제한을 풀어서 만들 수 있는 시장을 고민할 시점이라는 겁니다.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유튜브 스타일의 배포형 플레이어? 광고 탑재형 MP3? 상시 공연? 라디오헤드가 선보인 대인배 기질?
만화도 음악도 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 과연 시대 흐름을 어떻게 납득하고 또 어떻게 다른 시장을 풀어 나갈 것인가의 문제로 보자면 지금은 그 시장의 성격을 규정하는 극히 원론적인 부분에서 감정싸움만을 반복하는 기분입니다. 모르겠어요. 실제로 돈이 오가는 것이 시장이라는 거야 당연하지만 포스트 모더니즘의 흐름 그 자체가 아닌가 생각할만큼 파편화에 해체에 개박살을 조류로 삼고 있는 요즘 시대에선 그 자체도 뭔 의미인가 싶기도 하고. 분명한 건 그 모순되고 역설적으로 보이는 부분을 잘 잡아내는 이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돈을 벌 거라는 사실입니다. 누가 그 역할 모델을 만들어 낼까요.
서태지 씨나 신해철 씨 같은 괴짜분들이 이럴 때 사고 한 번 쳐 주면 좋으련만 말입니다.
* 결국 만화에도 같은 질문과 고민이 돌아갑니다. 과연 그 역할 모델을 누가 만들 수 있을까요? 지금 태반은 포털에만 목을 매답니다. 포털 중심의 웹 만화 구조도 앞으로 고작 1~2년이 한계선이 될 것임을 보자면 지금 그쪽만을 바라보며 입 벌리고 있는 작가들은 오래지 않아 또 한 번 배신감 내지는 좌절감을 느끼고 말겠죠. 포털은 시장이 아니거든요. 기회의 땅 역할극을 해 줬을 뿐. 관건은 다시 돌아와서, 어떻게 '시장'을 만들 것인가입니다.
정책적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기업 단위에서 사고를 쳐서 돈 버는 결과물을 내 줘야 하고 그 흐름의 주체는 온/오프를 아울러야 합니다. 그리고 단지 만화만으로만 접근하는 것 또한 순진한 발상입니다. 그럼 과연 어떤 방식이 있을까요. 현재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 어느 정도 진척이 되면 다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게 고개를 까딱거린 기회들이 답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을지 아닐지. 저 또한 궁금해요.
# by | 2007/10/24 16:23 | 삶의 흔적들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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