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9월 30일
존댓말과 깍듯함, 그리고 친하다는 것.
내가 다른 이에게 말을 놓는 건 가족 친지 외엔 극히 일부다. 동갑내기 친구 몇, 아니면 후배 몇. 특히 여성에게는 도무지 목에 말이 걸려서 반말을 할 수가 없다.
언젠가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혼인을 해도 부인에게 존대를 해 주는 남편이고 싶다고. 말부터 조심하지 않으면 은연 중에 우리네 아버지들 같은(그리고 우리 아버지 같은) '남자'로 여자를 대하기 쉬울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법 어려서 한 '맹세'인 덕에 지금은 거의 불문율 같이 내 의식을 감싸고 있다.
근데 어제 6년을 알고 지낸 누님 한 분이 갑자기 그러신다. 너 재미 없다고, 짜증난다고. 알고 지낸지가 그만치 됐는데도 왜 그리 깎듯하냐고. 그 정도 '가까운 사이'라면 말도 놓고, 좀 더 친근하게 굴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네가 지금 이런 대목에서 무슨 말을 할지가 너무 뻔하다고. 죄송합니다가 뭐고 안녕히 주무세요가 뭐냐고. 매번 너무 똑같은 거 아니냐고. 하다못해 잘 자요 같은 말도 할 줄 모르냐고.
…….
난 윗사람에게 깍듯한 것이 딱히 예의라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 돌이켜보건대 어린 시절부터 '남자 어른'이 '여자'를 대하는 모습이 싫었던 나로선 일정 선 이상으로 나가는 게 몹시 거부감이 들 뿐. 그래봐야 어쩔 수 없이 남자는 남자지만, 최소한 언변에서 "여자가 무슨" 같은 소리는 나오지 않고자 아예 그냥 사고를 통제한 셈이다. 지금은 그래서 윗사람은 물론 여성에게 반말-이라는 선택지 자체가 내 속에 없다. 블로그는 왜 반말로 쓰느냐고 물으신다면 일기장이라서라고 답하겠다.
근데 이 분은 그 부분이 몹시 맘에 안 드신 거다. '나는 얘와 많이 친하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얘는 그게 아닌 거'다. 사실 난 말을 놓아야만 경계선이 해제됐다 볼 수 있다고 하는 사고는 그다지 이해가 가진 않는다. 대학에서든, 사회에서든 술자리에 있다 보면 만난지 10분도 안 되어 말을 툭툭 놓으면서 형 동생 먹자고 하는 사람도 있고, 서로 풀어져야 친해진 거라고 '당연히'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그 사람 사고방식이- 나쁘단 건 아닌데 나한테 강요하진 않았으면 싶어서 좀 괴롭다. 근데 이 누님도 조금은 비슷한 상황이다. 친해졌으면 당연히 풀어져야 하는 듯한데 나는 그 분에게 6년 전 처음 만났을 시절 그대로인 거다. 대하는 모습이. 조금 다른 거라면 '누나'라고 호칭이 조금 부드러워진 거 정도. 그래봐야 말 자체는 별로 변한 건 없다. 이 부분이 문제겠지. 나는 정말 평소대로 하고 있는 것이고 누님으로서는 친하게 생각한다면서도 실은 경계선 안쪽으로 들어올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거다. 과연 나는 벽을 쌓고 있는 건가? 그건 아니다. 다만, 무진장 재미 없어 보일 거라는 것만은 자각하고 있다. 하지만 재미가 없는 거하고, 친해지기 싫다고 하는 거하곤 또 별개 문제 같은데.
어제 전화 통화는 그래서 내내 좀 불편했던 것이, 이 분이 날 따라한다면서 무진장 사무적으로 이야기를 하시는 거다. 말도 높여서. 거북할 수밖에 없다. 내 말은 높여서 말할 뿐 어투가 딱딱하진 않거니와 사무적이지도 않다. 다만 나이 차이도 무척 많이 나는 데다 애인 사이도 아니고 하니 지나치게 부드러운 어휘를 쓰진 않을 뿐이다. 이를테면 잘 자요, 좋은 꿈- 같은 거. 나도 사귈 땐 잘 자요- 같은 말 정도는 했었거든…. 요 얼마간 자정쯤마다 일 마치면서 들어야 했던 내 "안녕히 주무세요"가 참으로 거슬리셨나보다. (……) 다른 말이 없냐면서 화를 내시는 걸 들으며 목구멍에 다른 어휘들이 걸려서 나가지 못하는 고통을 맛 봐야했다.
난 내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정답'이라고는 생각 안 한다. 다만 내가 눈 앞에서 30년 가까이 보고 자라온 그 모습이 내 안에 분명 있을 것이니만큼 은연 중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게 싫어서 아예 눌러서 묶어놓고 있는 거고, 그 끈 중 하나가 '말'이다. 채 묶지 못한 게 여전히 사람들에게 드러나기도 하겠지만, 가끔 애인끼리 나와서 닭살스럽게 말을 놓고 있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고. 나도 오빠 소리 들으면서 안겨주는 여성이 있으면 편하게 말 놓으면서 말하고 싶다고. 그치만 난, 그렇게 풀어져서도 과연 상대를 맘 편하게 대할 수 있을 건가-라 했을 땐 답을 못 내리겠다. 까놓고 말해 그게 두려운 거다. 두려움을 딛고 앞으로 나가라? 글쎄. 분명한 건 나는 이 모습으로 '연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고, 그저 그런 나로서 살고 있을 뿐이지만. 상대가 그런 나를 보고 좀 더 가까이 오지 않고 있다면서 피곤해 한다면 어찌 해야 하는 건지 사실 잘 모르겠다.
이건 연기가 아냐. 일부러 그러고 있는 게 아니라 이미 그냥 나야. 재미 없고 바보스러워도 그냥 나야. 한쪽은 풀고 한쪽은 묶고 할 수 있는 그런 단계가 아니라고요.
난 그저 이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상대는 '틀린 것'으로 간주를 한다면.
이를 어찌 해야 하는 건지. 힘드네. 좀.
나와는 '당연함'의 범주가 좀 다른 듯하다. 이래저래.
언젠가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혼인을 해도 부인에게 존대를 해 주는 남편이고 싶다고. 말부터 조심하지 않으면 은연 중에 우리네 아버지들 같은(그리고 우리 아버지 같은) '남자'로 여자를 대하기 쉬울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법 어려서 한 '맹세'인 덕에 지금은 거의 불문율 같이 내 의식을 감싸고 있다.
근데 어제 6년을 알고 지낸 누님 한 분이 갑자기 그러신다. 너 재미 없다고, 짜증난다고. 알고 지낸지가 그만치 됐는데도 왜 그리 깎듯하냐고. 그 정도 '가까운 사이'라면 말도 놓고, 좀 더 친근하게 굴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네가 지금 이런 대목에서 무슨 말을 할지가 너무 뻔하다고. 죄송합니다가 뭐고 안녕히 주무세요가 뭐냐고. 매번 너무 똑같은 거 아니냐고. 하다못해 잘 자요 같은 말도 할 줄 모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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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윗사람에게 깍듯한 것이 딱히 예의라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 돌이켜보건대 어린 시절부터 '남자 어른'이 '여자'를 대하는 모습이 싫었던 나로선 일정 선 이상으로 나가는 게 몹시 거부감이 들 뿐. 그래봐야 어쩔 수 없이 남자는 남자지만, 최소한 언변에서 "여자가 무슨" 같은 소리는 나오지 않고자 아예 그냥 사고를 통제한 셈이다. 지금은 그래서 윗사람은 물론 여성에게 반말-이라는 선택지 자체가 내 속에 없다. 블로그는 왜 반말로 쓰느냐고 물으신다면 일기장이라서라고 답하겠다.
근데 이 분은 그 부분이 몹시 맘에 안 드신 거다. '나는 얘와 많이 친하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얘는 그게 아닌 거'다. 사실 난 말을 놓아야만 경계선이 해제됐다 볼 수 있다고 하는 사고는 그다지 이해가 가진 않는다. 대학에서든, 사회에서든 술자리에 있다 보면 만난지 10분도 안 되어 말을 툭툭 놓으면서 형 동생 먹자고 하는 사람도 있고, 서로 풀어져야 친해진 거라고 '당연히'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그 사람 사고방식이- 나쁘단 건 아닌데 나한테 강요하진 않았으면 싶어서 좀 괴롭다. 근데 이 누님도 조금은 비슷한 상황이다. 친해졌으면 당연히 풀어져야 하는 듯한데 나는 그 분에게 6년 전 처음 만났을 시절 그대로인 거다. 대하는 모습이. 조금 다른 거라면 '누나'라고 호칭이 조금 부드러워진 거 정도. 그래봐야 말 자체는 별로 변한 건 없다. 이 부분이 문제겠지. 나는 정말 평소대로 하고 있는 것이고 누님으로서는 친하게 생각한다면서도 실은 경계선 안쪽으로 들어올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거다. 과연 나는 벽을 쌓고 있는 건가? 그건 아니다. 다만, 무진장 재미 없어 보일 거라는 것만은 자각하고 있다. 하지만 재미가 없는 거하고, 친해지기 싫다고 하는 거하곤 또 별개 문제 같은데.
어제 전화 통화는 그래서 내내 좀 불편했던 것이, 이 분이 날 따라한다면서 무진장 사무적으로 이야기를 하시는 거다. 말도 높여서. 거북할 수밖에 없다. 내 말은 높여서 말할 뿐 어투가 딱딱하진 않거니와 사무적이지도 않다. 다만 나이 차이도 무척 많이 나는 데다 애인 사이도 아니고 하니 지나치게 부드러운 어휘를 쓰진 않을 뿐이다. 이를테면 잘 자요, 좋은 꿈- 같은 거. 나도 사귈 땐 잘 자요- 같은 말 정도는 했었거든…. 요 얼마간 자정쯤마다 일 마치면서 들어야 했던 내 "안녕히 주무세요"가 참으로 거슬리셨나보다. (……) 다른 말이 없냐면서 화를 내시는 걸 들으며 목구멍에 다른 어휘들이 걸려서 나가지 못하는 고통을 맛 봐야했다.
난 내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정답'이라고는 생각 안 한다. 다만 내가 눈 앞에서 30년 가까이 보고 자라온 그 모습이 내 안에 분명 있을 것이니만큼 은연 중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게 싫어서 아예 눌러서 묶어놓고 있는 거고, 그 끈 중 하나가 '말'이다. 채 묶지 못한 게 여전히 사람들에게 드러나기도 하겠지만, 가끔 애인끼리 나와서 닭살스럽게 말을 놓고 있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고. 나도 오빠 소리 들으면서 안겨주는 여성이 있으면 편하게 말 놓으면서 말하고 싶다고. 그치만 난, 그렇게 풀어져서도 과연 상대를 맘 편하게 대할 수 있을 건가-라 했을 땐 답을 못 내리겠다. 까놓고 말해 그게 두려운 거다. 두려움을 딛고 앞으로 나가라? 글쎄. 분명한 건 나는 이 모습으로 '연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고, 그저 그런 나로서 살고 있을 뿐이지만. 상대가 그런 나를 보고 좀 더 가까이 오지 않고 있다면서 피곤해 한다면 어찌 해야 하는 건지 사실 잘 모르겠다.
이건 연기가 아냐. 일부러 그러고 있는 게 아니라 이미 그냥 나야. 재미 없고 바보스러워도 그냥 나야. 한쪽은 풀고 한쪽은 묶고 할 수 있는 그런 단계가 아니라고요.
난 그저 이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상대는 '틀린 것'으로 간주를 한다면.
이를 어찌 해야 하는 건지. 힘드네. 좀.
나와는 '당연함'의 범주가 좀 다른 듯하다. 이래저래.
# by | 2007/09/30 14:02 | 삶의 흔적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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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PC통신이나 인터넷에선 '님'을 붙이는 것이 당연한 일이죠. 헌데 현실에선 '씨'만 붙여도 충분한데 넷상에서 '씨'를 붙이는 사람은 어째선지 굉장히 불쾌하더군요. '님'을 붙이는 게 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런 이유로 "나는 다른 사람에겐 '님'을 붙이지 않고, '씨'를 붙이겠다. 당신들도 나에겐 '씨'를 붙여라. 나한테 '님'을 붙이면 불쾌하다"라고 선언하는 분도 있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내가 왜 고작 당신 하나 때문에 그런 신경을 써야해? 모두 다같이 '님'을 붙이면 간단한데 왜 당신한테만 '씨'를 붙여야 할지 '님'을 붙여야 할지 신경써야 하지?"가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비슷하게 현실에서 친한 사람은 '말을 놓는다.'란 어느 정도 친해진 사이란 걸 암묵적인 동의처럼 나타내고 있으니, 반대로 '오래 만났는데도 존대말한다'라는 건 '당신과 난 사무적인 이유로 만날 뿐 딱히 친한 건 아니다'란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난 그다지 친하단 느낌도 없는데 상대만 친한 척 말을 놓는다면 불쾌한 것도 당연합니다만, 반대로 난 친하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만 딱딱하게 말을 한다면 그것도 좀 그렇겠지요.
그렇다곤 해도 그 누님이 화를 낼 정도인가? 라고 묻는다면 저도 고개를 갸웃, 할 일이긴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