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지하철에서 박정희 팬을 만나다

안 그래도 잠 못 자서 머리가 띵한데 하필 탄 전철에서 박정희를 큰 소리로 찬양하고 있는 사람을 봤다. 그 분이 없었으면 어쩌구, 누가 이 나라를 이만큼 하게 해 놨는데 어쩌구 같은 실로 그 계열에선 교과서 같은 언변이 쉴 새 없이 엄청난 음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게 오죽하면 그 사람 대각선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다 일어나 다른 칸으로 가는 바람에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타고 있는 사람이 적은 것도 아니건만. 물론 나도 옆 칸으로 갔다. 그 소리 듣고 있을 만큼 마음이 착하지도 않아서.


오죽 못났으면 그 시간에 거기서 그러고 있을까 싶기도 해서 측은하기도 했고, 오죽 미쳤으면 지금 박정희를 찬양하고 있나 싶어 더 역했지만, 문제는 그 멍청한 양반의 나이가 아무리 높게 잡아도 60은 안 넘어 보이더라는 거다. 고작 50대 정도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착잡했다. 이 나라의 50대 남성이 지니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사회 인식이란 화두를 다시 한 번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 나이대 남성이 동년배에 가까운 이들의 정치적 위치와는 정 반대에 서 있는 모습 하며, 하필 그 대상이 박정희 멍멍이와 그 딸년이라는 점은 무엇을 시사하는가를 고민하게 한다.

- 50대 중년 남성들은 IMF에 직격당한 세대다.
- 50대 중년 남성들은 공부를 통한 사회적 계급 상승에 목을 매달았던 세대다.
- 50대 중년 남성들은 자식들에게도 같은 방식의 신분상승을 강요한 세대다.
- 50대 중년 남성들은 일 말곤 할 줄 아는 게 술담배밖에 없는 문화에서 살아온 세대다.
- 50대 중년 남성들은 경쟁과 발전과 경제라는 표현을 삶 내내 세뇌당하고 산 세대다.
- 50대 중년 남성들은 대부분 비슷한 또래 또는 후배였던 이들의 사회적 투쟁을 외면한 세대다.
- 50대 중년 남성들은 자신들이 이 나라를 이 만큼 세워 놓았다고 자부하는 세대다.

참고로 그 또래보다 조금 나이가 어린 쪽에 속하던 386세대 투쟁가들은 지금 정치권에 올라가 욕먹든 말든 어쨌든 세력 형성 중이다. 자기 뭐 빠지게 일할 때 시위나 한 놈들이란 인식이 안 들 리가 없겠지. 게다가 이야기하는 게 자기가 보고 듣고 자랐던 걸 다 욕하고 앉아 있네? 자기 삶을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다보니 박정희 향수를 더 찾는 거다. 그거 말고는 지탱이 안 되니까. 비슷한 이야기로, 뒤따르는 세대들이 인정해주지 않는 것도 야속한데 그것들이 지지하는 건 박정희하곤 정 반대네.

그래서 사실 50대의 노무현 비난은 정치적인 것과도 거리가 먼 우리 좀 봐 줘 우리를 부정하지 말아줘 식의 생떼에 가깝다. 일종의 자기 변호고 일종의 질투다. 게다가 노무현은 자기들과 나이차도 정말 얼마 안 난다. 골때리게도.

하지만 가장 나쁜 건 이런 불쌍한 세대에게 이론을 제공하고 있는 조갑제 같은 놈들하고 언론들이다. 그들은 분노를 키워 투쟁하라 요구하고 있다. 한창 일할 그 시간에 노약자석에 앉아서 꾀죄죄한 얼굴로 박정희 찬양하고 노무현 욕하고 있던 그 사람을 욕하기엔 그것밖에 버틸 구석이 없었던 삶 자체가 불쌍해 뭐라 못하겠다. 하지만 민폐인 만큼 발길로 걷어차 입을 닥치게 하고는 싶었다. 워낙 심했거든. 젠장 나는 일도 안 끝나 밤 새서 자료 만들고 잠도 못자고 회의해놓곤 좀 맘 편하게 이동하고 싶었는데 이 버러지는 대체 어디다 대고 박빠짓이야. 이젠 그래도 안 잡아가는 세상이지. 그건 아냐?

이 나라의 50대가 해야 할 건 신문을 끊는 것과 술 담배를 끊는 것과 가족과 대화하는 거다. 세상 보면서 불만 가져봐야 당신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다. 인정하라. 지금은 당신들이 살던 그 시대가 아니다. 마음으로 따르던 박정희는 제 부하 총 맞아 죽은 개새끼고, 태극기 옆에 제 대가리 걸어놓던 전두환은 그 사진 구도 그대로 목을 잘라 걸어놔도 모자랄 대역적이며, 하물며 그 뒤를 이은 한나라당은 소속자들과 지지자들을 몽땅 다 파묻어도 시원찮은 개새끼들이다. 당연한 죄값을 치르고 있는 그들을 그리워하지 마라. 행여나 당신 자식들이 그 꼬락서니를 보고 자랄까 두렵다. 배는 나오지 아내는 심드렁하지 자식들은 인정도 안 해주지 TV밖에 낙이 없으니 떠오르는 건 박정희요 보이는 건 노무현이니 차마 처자식 쥐어패진 못하겠고 욕할 건 노무현이지. 이유가 뭔 상관이야 욕만 할 수 있으면 되는 걸.


정말 당신이 어른이라면 자기가 살아온 삶이 바보스러웠다는 것조차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좋다. 그건 나쁜 게 아니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면 그걸 그 자체로 인정하면 그만인 거다. 안타깝게도 지금 2, 30대들조차도 당신들과 똑같이 진짜 할 줄 아는 거 아무것도 없이 내쳐 달리고만 있으니 다를 거 없거든. 놀 줄 아는 게 있어 그렇다고 당신네들처럼 갑자기 세상이 마구 바뀌고나 있어. 그 나이에 술담배 꼬나물고 애 잡는 거 보면 할 말 없다고. 게다가 지금 2,30대 초엽들은 당신들 때 경제 무너진 꼴을 직격으로 같이 얻어맞았거든. 좌절감이 적은 줄 알아? 하지만 그래도 살고 있잖아. 바보 같지만 그래도 당신들처럼 나는 열심히 살았다고 소리지르고 있진 않잖아. 왜 이러고 살고 있냐고 괴로워는 하고 있지. 차라리 그게 더 현실적이라고 봐. 최소한 잘하고 있다고는 생각 않잖아.

그래서 그 꼴 물려주고 싶어하지도 않잖아. 그것만으로도 한 걸음 진보한 거라고 봐. 난. 자기 꼴을 인정이나 하고 있다는 점에선. 그래도 그들은,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세상을 즐기려고 이것저것 사고도 쳐 가면서 문화를 만들어간다. 선구자들이 50년간 얻어맞아가면서 조금씩 키워온 것, 이제야 드러내놓고 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난, 곧죽어도 그런 건 보지도 못하고 옛날이 좋았지 하는 놈들을 어른으로 볼 수 없다. 불쌍한 자여, 오죽 자기 생각 들어졸 대상이 없어서, 하다못해 가족에게서도 버림받지 않고서야 그러고 있지 않겠지. 불쌍한 건 세상이 아니라 당신이었다. 뒈지든지, 아니면 가정으로 돌아가라. 신문 끊고 TV 끄고 자식을 바라보라. 불쌍한 건 세상이 아니라 당신이다.

by 서찬휘 | 2007/06/05 12:27 | 세상 바라보기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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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로리 at 2007/06/05 12:37
예전에 그런 분과 대 전투를 한 적이 있죠. 버스 안에서 떠들어대서.... -_-; 시끄러우니 방해된다고 하자.. 빨갱이이 뭐니... 결국 세상을 바꾸고 위로 올라간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한 그 또래의 투쟁자들이었지, 이제와서 만만한 버스 안에서 떠들어대는 그들이 아니니까요
Commented by 서찬휘 at 2007/06/05 12:48
악플러들이 나오는 까닭은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주위에 없다는 겁니다. 하물며 가족조차도. 결국 똑같은 심리죠.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건, 그만큼 자기 존재를 알리고 뇌리에나마 남기고 싶어하는 본능에 가깝다고 봅니다. 물론 듣는 사람은 괴롭죠.
Commented by DAIN at 2007/06/05 12:59
그러니까 1주일 전쯤에 4호선 전철에서 이명박 개새끼하고 욕하는 영감님을 본 적이 있어서 "오오 저런 시선을 가진 분이" 라고 생각했더니 바로 박근혜 공주님 찬양모드가 되시더군요.
Commented by 烏有 at 2007/06/05 15:08
결국 모두 외로운거죠.으음...이나라가 가없습니다,............내처지가 더 한심하긴 하네요-_-;
Commented by 룸룸 at 2007/06/05 18:53
아버지와 차 안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정치쪽으로 이야기가 넘어가자마자 박정희 찬양을 하시는 바람에 히껍했다죠orz .. '그래도 독재자였잖아요'라고 한 마디 했다가 네가 뭘 안다고 그래부터 시작해서 그 양반이 얼마나 청렴결백하셨는데 노무현은 애색히라고 종류의 폭격orz 아예 구멍난 양말 신을정도로 청렴결백하셔서 요정에서 술파티하시다가 부하에게 죽었죠.. 라고는 한 마디도 못하고(아부지께서 운전대를 잡고 계셨으니까요(...)) 예이예이 그저 아부지 말씀이 옳사옴네다orz 하고서 다만 절대로 한나라당에는 표를 주지 않아야지 하고 다짐햇슴니다orz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건 대통령이 아니라 왕인 걸까요. =_=)y-~
Commented by 마법고냥이 at 2007/06/05 19:27
전에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고 나서 어머니께 이러니 저러니 해도 박정희는 독재자였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어머니가 그래도 그만큼 우리나라 먹여 살린 대통령이 어디 있냐면서 마구 화를 내시더군요. 이러다 싸우겠다 싶어서 '그냥 그렇다고요.'하고 말았어요. 후냐.
Commented by 한국출장소장 at 2007/06/05 19:33
문득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요즘 호국 보훈의 달이라 그런지 제 직장 내부망에도 박정희 찬가 비슷한 글이 올라왔더군요.(육사 교장의 편지라고 검색하시면 쏟아져 나올겁니다-_-) 덧글단 사람들은 감동이네 눈물이 나네 하는데 저는 하품만 나더군요. 그 양반 군단장 할 때 그 군단 소속 사단에 근무했던 덕(?)에 썸씽(?)을 아는 것도 았고, '역시 가재는 게편이구나'싶기도 하고.-_-
Commented by 한국출장소장 at 2007/06/05 19:33
비슷한 예로 한 잡지의 모 편집장의 기고문에는 이런 글도 있었죠. '정권이 경제를 나 몰라라 해도 그나마 수출이 되고 경제가 굴러가는 것은 기초를 닦은 앞 세대가 있었고, 데모만 하고 옥살이를 하던 그들과는 달리 경제 일선에서 해외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세계를 주름잡던 우리 수출역군의 힘이였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 잡지의 이름은 '월간항공'입니다.-_-
Commented by winbee at 2007/07/11 15:53
오늘,그 조갑제가 “부자가 더 도덕적, 가난한 자 폐만 끼칠 뿐” 이라는 망발로
스타덤에 오른 현실을 과연 인정해줄지 어떨지 의문입니다.
그래도 멍나라당이 다행히 자기집 마당에서만 싸워대니 좀 낫습니다.
(마당이 어째 투견장 같다 느껴지는건 나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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