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의 홍대

일을 하긴 해야겠는데, 너무 허기가 지고 기분도 안 좋아서 그냥 적당히 옷 집히는 대로 걸치고 뛰어나갔다.


새벽 시간대의 대학 근처란 술 취한 젊은이들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많이 제공하는 장소다. 완전히 술에 절어 뻗은 여자를 어렵사리 업고 낑낑대며 걸어가던 남자를 봤다. 그래도 질질 끌고 가지 않고 업고 가는 건 좋은데 이 아가씨가 골반바지에 몸에 달라붙는 상의를 입은 탓에 업으니까 옷은 위로 말려 올라가지 바지는 업은 덕분에 아래로 내려가지, 허리부터 엉덩이 1/3 정도까지의 맨살이 고스란히 뒤에 있는 사람에게 노출된다. 덕분에 몸매 감상은 잘 했소, 아가씨. 부끄러우면 술을 마시지 말든가. 치마가 아닌 건 그나마 다행이구랴.

그나마 남자 쪽에게 안쓰러운 미소를 던진다. 학창시절 뒤처리를 해봐서 알지만 술 취한 여자는 정말 무겁다. 몸만 봐선 가벼울 것 같은 여자도 늘어지면 무게가 두 배로 느껴진다. 짧지 않은 거리를 업고 가야 했던 남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게다가 그냥 오롯이 간 것도 아니고 중얼중얼 거리고 있더라. 남자였으면 업긴 쥐뿔 일단 어깨로 메고 끌고 가든지, 싸대기를 갈겨서 정신 차리게 해서 택시를 태우거나 그냥 방치플레이를 하면 될 텐데. 그놈의 술이 뭐가 좋다고들.

한쪽에서는 늙은 선생과 어린 제자가 막 싸우고 있었다. 사정이야 모르겠지만 원하는대로 안 해 준 선생에게 화를 내고 있는 모양새다. 오밤중에 나이차가 40은 나 보이는 이들이 말로 싸우는 모습은 별로 보기가 안 좋다.

영화 「즐거운 인생」 촬영 현장을 잠시 구경할 수 있었다. 영화 촬영 현장은 처음이다. 밤중에 다들 고생하는구나. 잠깐 멈칫 했더니 스태프가 주의를 준다. 카메라 쪽 쳐다보지 말고 가던 길 가시란다. 아쉽지만 어쩌랴. 엑스트라로라도 영화에 한 번 나오면 재밌을 것 같은데.


대체 뭔 생각으로 그 근처까지 걸었나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어지간히도- 일하기가 싫은 모양이다. 피곤한데도, 졸린데도 마구 걸었다.

by 서찬휘 | 2007/05/07 03:16 | 삶의 흔적들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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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battler at 2007/05/07 04:43
있죠...일하기 싫을때가...
하지만 일이 끝나기 전엔 절대 맘이 편하질 못하더라구요,
Commented by 댕구리 at 2007/05/07 04:51
그런 곳도 있는 법이지요.
Commented by 단페이 at 2007/05/07 09:39
역시 홍대는 대학가가 아니랍니다.....^_^;
Commented by 서찬휘 at 2007/05/09 17:51
battler 님) 그러게요.
댕구리 님) 그러게요.
단페이 님) 그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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