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본가에 왔습니다.

쌓여 있는 일의 분량을 생각하자면 사실 와선 안 되었습니다. 냉철하게 말하자면 그렇죠. 하지만 왔습니다. 한 달이 다 되도록 얼굴도 비치지 않는 매정한 자식놈이고 싶지도 않고, 멀리 외가에서 외할머니께서 올라오셨는데 손주가 되어선 외가로 가시기 전에 뵙기도 해야 하겠고. 하지만 다 집어치우고 잠시라도 마음 편히 '가족'과 같이 있고 싶었습니다.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너무너무 좋아하시고- 동생도 쓰다듬어주고 업어주고. 역시 집이란 좋은 곳입니다. 그냥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편한 그런 자리.

물론 아주 오랜만에 제 방에 들어서는 순간 풍겨오는 책 냄새가 '이 방만은 마계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지만 말이죠. (…) 아아, 책 쌓인 걸 보고 있노라니 정신이 아득해 옵니다.



............................................



오늘 조금 속을 까겠습니다.
그냥, 조금 그러고 싶어졌습니다.




가끔 징징대긴 하지만,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올해 들어 그런 생각이 많이 들게 하는 일을 많이 겪었고, 그래서 많이 깨달았습니다.

난 사랑 받고 있구나.
난 사랑 받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러한 '소중한' 마음을 알아가는 요즘입니다.


하나 고백을 하자면, 저는 저 자신에게 자신이 없었습니다.
'일'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좀 달라요. 향상심이라는 면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일에 관한 한 저는 오만하기까지 할 정도로 능력치 이상을 노려대고 삽니다.
도무지 제 또래나 제 아래 연령대 사람을 만날 수 없는 '판'에서 살아남으려다 나이 콤플렉스를 끌어안고 살고 있긴 하지만, 최소한 꿀리고 싶진 않거든요.


하지만

저 자신 말이죠. 저 자신, 제 외모, 제 성격, 제 내면.
제 성장과정에서 저 스스로에게 느껴왔던 온갖 혐오와 역겨움을 그대로 끌어안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사실 누가 나 같은 걸 사랑해줄까.
나 같은 거, 좋게 보아줄까?
그렇게도 생각했어요.

가족의 사랑-이란 부분과는 조금 다른 부분에서 말이죠.


거울을 보면서 가끔 구역질이 날 때도 많았습니다.

제가 그나마 제 얼굴에 로션이란 걸 바르기 시작한 게 서울에 올라가면서 동생이 억지로 떠넘기다시피 한 걸 바른 거라는 걸 말하면 사람들이 꽤 놀랍니다. 그러니까 올 7, 8월부터입니다. 그 이전까지 외모를 꾸미고 다니는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욕심이 없었다기보다는 할 생각도 안 들었습니다. 옷을 고를 줄 모른다기보다는 그냥 있는 거 입고 다니지 하는 심산에 가까웠고, 보다 못한 동생이 가끔 끌고 가서 입혀놓는 게 전부다시피 했습니다.

그렇게 저 자신에게 욕심을 내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어요. 신경을 안 써도 되니까요.

그냥 일만 할 수 있으면 되니까.
어차피 연예인도 아닌데. 다만 '운영자'로서 충실할 수 있으면 그만이지.

그렇게만 생각했어요.


게다가 남자로서의 제가 싫었습니다.

그렇다고 트랜스젠더가 되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안 하지만, 전 딱히 기억이 남아 있지 않던 시절부터 치마나 스타킹을 입는 걸 좋아했다고 해요. 기억에도 조금 남아 있는 어린 시절에도 남자라기보다는 성격이 여자에 가까웠고- 물론 대학 MT 때 억지로 여장을 당했을 때엔 매우 곤혹스럽긴 했지만요. 아는 형이 가장무도회 비슷한 행사를 열었을 때 자의로 가발을 쓰고 나가 보았더랬습니다.

제 안에서 '남자'로서의 본성이나 '남성' 다운 부분을 발견할 때의 혐오감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이건 단지 사람을 대할 때의 그런 속성이라기보다는 생리적인 부분에 더 가깝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냥 그런 저를 끌어안고 살 따름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 자신에 대해 누군가가 생각을 해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할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말이죠. 0이었습니다 0.
농담조로 솔로부대, 애인 어쩌구 했지만 한편으로는 생각도 않고 있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연말에 아는 누님이 타로점을 쳐 줬는데, 정확했지요.
"네가 움직일 생각을 않는데 되겠냐?!"


그래서 요 몇 개월. 그러니까 서울에 거처를 잡고 움직이면서 쏟아지는 시선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납득조차 안 갔습니다 사실.

낯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요즘 사람들에게서 어떤 이야기를 듣고 있느냐면 말이죠.

"예뻐요"
"멋져요"
"많이 유해졌네요"
"귀엽네요"
"나이차만 적었으면 어떻게 해 봤을 거야"
"넌 남자로서 매력적이야"
"재밌는 사람이네요"
"생각보다 부드러운 사람이었군요"

등등입니다. 실제로 눈 앞에서 이런 소리를 여러 사람들에게서 듣고 있습니다.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강도로, 꾸준히라도 좋을 만큼 계속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때마다 얼버무리면서도 물음표를 띄우고 있었습니다. 물론 재밌게 봐 주고, 다정하게, 부드럽게 봐 준다면 좋겠지만- 외모라든지, 매력이라든지 등은 도무지 상상도 안 갔거든요.

나한테 가당키나 한 소린가?


그냥 열심히 일을 하고, 일에서 인정을 받고.
가고 싶어하는 방향에서. 틀을 짜나갈 수 있는 사람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던 저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만큼 남의 시선과 마음이 신경 쓰인 적은 정말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선과 마음에 대해 이 정도로 고민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과연 나는, 남의 마음 속에서 어떤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지금까진 그래도 운영자, 그나마도 수틀리면 기껏해야 역오망성 따위 보내 마땅한 저주받을 녀석 아니었느냐고. (실제로 받았지요. 어린애의 잔인함에 치를 떨었더랬지요…)


그렇게 몇 달을 지나보내면서.


남의 시선들을 조금씩 진담으로, 진심으로.
조금씩 받아들여가고 있는 요즘입니다. 아직까지도 저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는 구석이 있지만.
그래도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씩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 요즘입니다.
'진실'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게 보아주는 '칭찬'하는 마음들까지 거짓은 아니라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런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론으로 아는 것과는 다른 문제겠죠.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이런 저는 '누군가에게' 분명 상처를 입히고 있을 겁니다. 이미 많이 입혔습니다. 알아요.

제가 참 몹쓸 놈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말이지요. 그것이 단순히 저에게 마음이 있고 없고 이전에 결여되어 있는 무언가를 채워나가고 배워나가는 과정이 너무도 절실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그건 본능이지 다른 게 아니라고. 그리고 저는 생각해봅니다. 과연 그런가.

모르겠어요. 그 부분을.
다들 '당연히 생기는 부분'이라고들 하는 그 부분이,
저에겐 명백하게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말이지요.
지난 늦여름, 저에게 마음을 전한 분에게 이딴 말을 던지고 말았던 겁니다.

이런 저라도 괜찮겠어요?라고.


진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저라서 계속 상처를 주고 울리고 있습니다.




지금, 전 연애를 목적으로 좀 더 서로 알아가자면서 만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 애인은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 제가 그렇게 말했었지요. 왜냐면.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었고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저를 정말 정말 많이 생각해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참… 행복합니다. 제 딴에는 좀 더 다가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상대가 저를 이해하려는 노력에는 털끝만큼도 미치질 못하는데다 그 노력조차 이만큼도 알아차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속터져 하며 말해줘야 아는 지경이다보니 말 다했지요.

…애정이 정말 터져 흐른다면, 그것이 자연히 감지가 되는 걸까요. 정말 그런 건가요?
당연하다고 하실 분들 많으실 것 같습니다만.

전 정말 그 부분을… 모르겠습니다. 모르겠어서 더 당황스럽고 난감해 하고 있어요.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 거구나…라는 것까지는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이 자연스레 '나와야만' 하는 당연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모르겠고. 갸웃거리고 있습니다. 그게 나와야만 하는 것이라면, 지금의 저는 갈 길이 멉니다. 그런데 이게 '애정이 전혀 없어서'라 단정지으려 든다면, 그건 또 아니란 말이에요. 진심으로 말하건대, 좀 더 가까이 가고 싶고. 보듬고 싶고. 알아가고 싶고 그렇습니다. 최근 깨닫기를 남자로서 여자에 대해 품는 '흑심'이란 부분 자체를 아예 뇌리에서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성에게 좀 더 '접근'하는 것 자체를 생각도 않고 있었습니다만(진심입니다) 최근엔 그래도 조금씩 빗장을 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애정이 없기에 어떤 행동이 나오지 않는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가…라고 했을 때, 애정이 없기에 어떤 행동을 더 안해준다…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가…라고 했을 때. 몹시 피로감을 느끼고 말았습니다. 정말 괴로웠습니다. 차라리 마감을 10번을 뛰고 싶을 정도로.

그 인식차 사이에서 물음표만을 잔뜩 띄우고 있으니….
저로서도 답답해 죽을 지경이지만. 저 때문에 속끓이는 그 사람은 어떻겠어요.

남들은 다 '당연하다' 여기고 있는 그 부분 부터가,
저는 판단기준부터가 아예 서질 않는 것을.


정말 계속 생각해 보았지만.
애초에 애정의 유무 같은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진심입니다.
결여된 부분은 애정이 아니라 저 자신 어딘가의 사고 회로 자체가 고장나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아예, 백지입니다. 그 영역에 대해서만은.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저 자신을 좀 더 사랑해야 하겠고- 좀 더 자신감을 품어야 할 것 같고요.
꿀릴 게 없다는 자신감 외에, 나도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고 사랑스러운 사람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그리고 그런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그러지 않고선, 도무지 상대의 마음에 상대가 원하는 만큼 다가갈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평생 어떤 사람이 저에게 호의를 품은들, 아무리 제가 누군가를 좋아한다 한들 지금의 제 모습을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런 저라도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이나마 느껴가고 있는 이상.
조금씩은 변해가겠지요.



하지만 도무지- 그때까지 기다려달라고 말하기가 힘드네요.
힘들어하고 괴로워하고, 어째서 나만 당신을 이해해야 하느냐 묻는 그네에게 저는 말도 못했습니다.

지금 이 모습조차 제 한계치를 연일 경신해가고 있는 거라고 하면 비웃음을 사겠지요.
그것이 애정이 없어서라고 단언할 때면, 가끔 가슴이 아픕니다.
만남엔 이런 유형도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시건방진 생각도 해 보지만, 답은 아닌 것 같고요.

정말, 모르겠어요.
이렇게까지 저를 무력하게 만드는 문제가 언제 또 있었는가 궁금할 정도로 어렵습니다.



ROOM NO.1301의 주인공 녀석이 늘 자문하죠.
난 연애엔 맞지 않아-라고.

그딴 변강쇠 녀석이 말해봐야 별로 동감은 안 가지만(…).
요즘의 제 심경이 그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정말, 연애라는 화두와는 이렇게 맞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정말. 모르겠습니다.


거울속에 비친 저 자신을 가까스로 역겨워하지 않게 된 것조차 얼마 되지 않는 주제에.
지금 저는 스펙타클한 던전에 알몸으로 내던져진 소년 모험가 같아요.

by 서찬휘 | 2006/12/18 02:33 | 세상 바라보기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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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문곰 at 2006/12/18 03:42
후후후.... 이런 연애스러운 글을.... 진심이 느껴지는 글이군요, 게다가......
'그런 너라서 괜찮아'라고 느껴지실 듯..... 알흠다운 연말 보내시길....후후후....^^
Commented by yerimy at 2006/12/18 04:43
차..찬휘님 크로스..저 딱 요즘 이런 요지로 글 쓸려고 했었습니다 ;ㅂ;)/
Commented by 젠카 at 2006/12/18 09:13
찬휘님은 충분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네요. 힘내세요^^
Commented by 양군 at 2006/12/18 12:11
심히 주관적인 생각입니다만..
저는 애정의 표현, 감지등을 꼭 당연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사랑을 놓치기도 하고, 다음엔 그러지 말아야지 등의 생각을 하면서 조금씩 늘고 표현도 풍부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자신을 비하하진 마세요. 꼭 경험에 있어서 나이가 정비례하는건 아니잖아요. 찬휘님에겐 지금 그 고민의 시작 부터가 새로운 경험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편히 가지시길 바랍니다.
Commented by 냥냥 at 2006/12/18 14:31
낄낄낄... 제대로 걸려드신 것 같군요. "이렇게까지 저를 무력하게 만드는 문제가 언제 또 있었는가 궁금할 정도로 어렵습니다"라는 말이 나온다면, 지금 제대로 연애에 돌입한 겁니다. 연애라는 게 쉽게만 진행된다면 잘못된 거 같구요(물론 천생연분 커플도 있지만), '지금까지 연애만큼 나를 힘들게 한 게 없었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힘들기도 했다가 기쁘기도 했다가, 감정의 낙차가 큰 게, 그게 진짜 연애여욤. 이야... 누군지 몰라도, 정말 찬휘님한테 공 많이 들이고 있네요오오. 찬휘님 입에서 이런 말도 나오고. 푸하하하하~
Commented by 烏有 at 2006/12/18 14:43
푸푸푸...멋지네요.그분한테 응원하고싶습니다.진짜로 화이팅이라니깐요.
Commented by 냥냥 at 2006/12/18 15:40
아아, 맞아요, 저도 그분한테 응원을 좀... ^^
"힘내세요! 쫌만 기다리시면 찬휘님이 러브러브 광선빔을 뿜어내시겠습니다!"
푸하하하하~ 두 분 다, 힘내십쇼! ^^
Commented by CARPEDIEM at 2006/12/18 22:14
지금의 찬휘님은 경험치와 스킬, 그리고 관심과 열정/애정이 다른 한쪽으로 몰려있어서 그런 겁니다. 넘치는 곳에서 조금씩 덜어내 그분을 위해 사용해 주세요.

...라고 인사치레로 썼지만 솔로부대의 가슴을 후비는 이런 글을 보면... -_-)ず~
Commented by 임채 at 2006/12/19 02:12
뭐야 이 샬랄라한 글은..
Commented by 서찬휘 at 2006/12/20 10:55
말씀 남겨주신 문흥미 작가님, yerimy 님, 젠카 님, 세종 님, 오유 님, CARPEDIEM 님…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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