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04일
창작가를 향한 꿈
1.
10대 때. 난 프로그래밍을 했고… 언저리에선 늘 글을 썼고, 만화와 만화영화를 좋아했다.
유능하고 머리가 좋았던 동생과는 달리 늘 '감' 밖에 없는 나로선 글짓기 대회에 나가봐야 상복은 전혀 없었지만… 원고지 7~8장을 반복해서 교정받고 다시 써야 했던 중학시절을 넘어, 고교시절엔 시를 쓰고 소설을 쓰며 문학클럽 편집장이라는 역할도 맡았더랬다.
선생들이나 심사위원들에게선 늘 '학생답지 않은 소재와 내용'이라는 핀잔을 받곤 했었다. 칭찬이 아니라 완전한 핀잔이었다. 기성품같은 기교나 부리려 들지 말란 소리지. 당시 나는 통증과 증오심에 지쳐 자포자기에 몹시도 염세적인 시선을 안고 살았다. 10대의 증오심이라 해 봐야, 좁기도 좁아서 훗날 생각하면 고작 말 한 마디 건네보지 못하고 받지도 못한 채 서로 고여 썩어문드러졌던 것 뿐이라곤 하지만. 반면에 그 나이 때엔 그 자기 내면의 키만큼밖에 보이지 않는 법이다. 자연히 글의 내용도 그러했고… 하지만, 매달렸다. 유치해도 좋았다. 그렇게라도 내 속을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운영자라는 역할에서도 벗어나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다. 결국 전혀 다른 분야로 와서도 운영자 생활을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어쨌든… 글이란 걸 썼다. 아파서 1년을 완전히 '버린' 시기에도 글은 썼다.
당시에 많이 썼던 건 시였다. 소설은 그보단 적었다. 시는 죽어라 써서 팩스로 출판사에 보냈다가 욕만 먹은 적도 있었더랬지. 당시에도 '내 이름이 박힌 책을 내고 싶다'는 욕심만은 강했던 것 같다. 수준은 별 볼일 없었지만 여하간 참 열심히 썼었지. 소설은… 참 유치하게도 언제나 주인공이 나와 판박이였더랬다. 나는 아직 인물을 창조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던 셈이다. 10대는 욕심은 많지만 모든 것이 부족한 시기다.
어떤 이는 내 당시 모습과 내갈겼던 시들을 보며 '랭보 같다'라고 말했었다. 물론 천재 시인 같아서가 아니라, 어려서 잘도 설쳤다는 점이.
2.
10대 말엽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 지금은 이미 판에서 뒹굴다 못해서 다들 알 만한 사람들이 됐다. 나는- 그 무렵 만난 인연 가운데 하나가 어찌어찌 엮이다가 '만화'와 '글'이 엮이고 '운영'이라는 경험을 살릴 수 있는 만화 공간을 열었고… 8년이 지난 지금은 칼럼니스트로서 어찌어찌 돈을 벌며 살고 있다. 만화판의 사람들과 섞이고 이야기할 수 있고. 나는 몰라도 내가 운영하는 공간 두 곳의 이름은 어찌 들어본 분들도 만나고 하면서 나 나름대로는 열심히 뛰어 왔구나 생각하고 있다. 뭐, 프로그래머로도 활동은 하고 있지만 이미 환경 자체가 지나치게 바뀌어 있는 지금에 와선 전문 프로그래머라기 보다는 없는 인력 벌충하는 기분으로 하고 있긴 하다. 실제로 이번 독만상의 경우 완벽하게 '땜빵'이고…. 그래도 프레임워크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보면서 계속 관심을 두고 자료를 찾아 보는 걸 보면 그쪽도 아예 버릴 순 없는 것 같긴 하다. 여심도 아니건만 참, 갈대 같은 마음이다.
각설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들어 강하게 드는 게 바로 창작에 대한 욕심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이렇게 말했다. 만화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게 지금 8년째고, 나는 지금 스물 여덟이다. 10년을 채우는 서른이 되면 다시 창작에 손을 대 보고 싶다고. 소설도 쓰고, 시도 쓰고 싶다고. 그 때까지, 재료를 좀 더 쌓아두고 싶다고.
반응들이 조금 각양각색이라 재밌다. "나도 하는데 너라고 못하겠냐?"라는 펜더 형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그러나 이 말이 더 무시무시하다. 형, 형 정도의 내공은 난 죽었다 깨도 못 따라가요…) "뭐 할 수 있겠지"라는 누님들도 있고. 한편으로는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하는 거나 제대로 하지 웬…'이라는 표정이 역력한 사람도 있다. 그리고- 기획과 정책 등에서 뛰어야지 도로 창작으로 돌아가려 들면 어쩌냐고 꾸짖는 분도 있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수준을 떠나 욕심이 사그라들지 않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그렇다고 어느 한 쪽을 완전히 접을 생각도 없고 보면 창작가 여러분들이 볼 때 화가 날 지도 모르는 노릇이고. (한 가지만 해도 힘든 바닥인데 그딴 정신머리로 뭘 하겠다는 거야!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다면. 비웃음을 사는 한이 있더라도… 해 봐야지.
언제나 내 가슴 속에 자리하고 있는 부채감. 창작가들에게 빚지고 있다는 부채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해야지.
3.
10대 때와는 달리 20대 중반을 넘기며 난 참 편해졌다. 어려서 그다지 웃은 기억은 없고. 20대 초반에는 '무진장 재수 없는 놈'이었다는 소리를 나중에 가서 듣기도 했다. 가까이에서 날 지켜봐 준 이들은 당시의 나를 가슴에 칼을 박은 채 날카롭게 날이 서 있는 상태였다고 이야기해준다. 지금은 어떨까. 그래도 많이 편해졌다. 나름대로 응어리를 다스릴 수 있게 됐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게 됐다. 적당히 섞일 줄 알게 되었고… 동생이 자기 생각을 말할 때 가만히 들어줄 수 있고, 또 생각을 물어 답해주는 여유를 둘 수 있어 행복하다. 어느 날 문득 동생이 들려준 "그래서 오빠가 좋아"라는 말에 속으로 숨죽여 울 수 있는 칠푼이여서 좋다. 지금 정도가 그래도 마음이 참 편하다. 그 마음이 나와 함께 하는 이들에게도 다정함과 편안함으로 다가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아직 거기까진 모르겠다. 다만 내 표정이 참 밝아졌다는 이야기는 자주 듣는다. 그건 다행이다.
그래서 궁금해졌던 것 같다.
지금 이런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내 창작물이라면.
그 때의 그 피고름을 짜내듯 적어내려갔던 글귀들과는 다를 수 있을지.
지금의 눈에서 적어내려가는 내 창작물은.
어떤 색깔, 어떤 냄새를 띠고 있을지.
그게 너무너무 궁금해졌던 것 같다.
4.
나는 일상을 담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
내 망상은 환상 속에 있지 않다. 언제나 현실이다.
그리고… 지금은 행복을 이야기하고 싶다.
스스로 쌓아 올린 절망밖에 몰랐던 내 자신을 부끄러워하듯.
하지만 그 때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
언젠가는.
다시 쓰고 싶다.
누가 뭐라든 즐겁게.
10대 때. 난 프로그래밍을 했고… 언저리에선 늘 글을 썼고, 만화와 만화영화를 좋아했다.
유능하고 머리가 좋았던 동생과는 달리 늘 '감' 밖에 없는 나로선 글짓기 대회에 나가봐야 상복은 전혀 없었지만… 원고지 7~8장을 반복해서 교정받고 다시 써야 했던 중학시절을 넘어, 고교시절엔 시를 쓰고 소설을 쓰며 문학클럽 편집장이라는 역할도 맡았더랬다.
선생들이나 심사위원들에게선 늘 '학생답지 않은 소재와 내용'이라는 핀잔을 받곤 했었다. 칭찬이 아니라 완전한 핀잔이었다. 기성품같은 기교나 부리려 들지 말란 소리지. 당시 나는 통증과 증오심에 지쳐 자포자기에 몹시도 염세적인 시선을 안고 살았다. 10대의 증오심이라 해 봐야, 좁기도 좁아서 훗날 생각하면 고작 말 한 마디 건네보지 못하고 받지도 못한 채 서로 고여 썩어문드러졌던 것 뿐이라곤 하지만. 반면에 그 나이 때엔 그 자기 내면의 키만큼밖에 보이지 않는 법이다. 자연히 글의 내용도 그러했고… 하지만, 매달렸다. 유치해도 좋았다. 그렇게라도 내 속을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운영자라는 역할에서도 벗어나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다. 결국 전혀 다른 분야로 와서도 운영자 생활을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어쨌든… 글이란 걸 썼다. 아파서 1년을 완전히 '버린' 시기에도 글은 썼다.
당시에 많이 썼던 건 시였다. 소설은 그보단 적었다. 시는 죽어라 써서 팩스로 출판사에 보냈다가 욕만 먹은 적도 있었더랬지. 당시에도 '내 이름이 박힌 책을 내고 싶다'는 욕심만은 강했던 것 같다. 수준은 별 볼일 없었지만 여하간 참 열심히 썼었지. 소설은… 참 유치하게도 언제나 주인공이 나와 판박이였더랬다. 나는 아직 인물을 창조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던 셈이다. 10대는 욕심은 많지만 모든 것이 부족한 시기다.
어떤 이는 내 당시 모습과 내갈겼던 시들을 보며 '랭보 같다'라고 말했었다. 물론 천재 시인 같아서가 아니라, 어려서 잘도 설쳤다는 점이.
2.
10대 말엽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 지금은 이미 판에서 뒹굴다 못해서 다들 알 만한 사람들이 됐다. 나는- 그 무렵 만난 인연 가운데 하나가 어찌어찌 엮이다가 '만화'와 '글'이 엮이고 '운영'이라는 경험을 살릴 수 있는 만화 공간을 열었고… 8년이 지난 지금은 칼럼니스트로서 어찌어찌 돈을 벌며 살고 있다. 만화판의 사람들과 섞이고 이야기할 수 있고. 나는 몰라도 내가 운영하는 공간 두 곳의 이름은 어찌 들어본 분들도 만나고 하면서 나 나름대로는 열심히 뛰어 왔구나 생각하고 있다. 뭐, 프로그래머로도 활동은 하고 있지만 이미 환경 자체가 지나치게 바뀌어 있는 지금에 와선 전문 프로그래머라기 보다는 없는 인력 벌충하는 기분으로 하고 있긴 하다. 실제로 이번 독만상의 경우 완벽하게 '땜빵'이고…. 그래도 프레임워크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보면서 계속 관심을 두고 자료를 찾아 보는 걸 보면 그쪽도 아예 버릴 순 없는 것 같긴 하다. 여심도 아니건만 참, 갈대 같은 마음이다.
각설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들어 강하게 드는 게 바로 창작에 대한 욕심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이렇게 말했다. 만화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게 지금 8년째고, 나는 지금 스물 여덟이다. 10년을 채우는 서른이 되면 다시 창작에 손을 대 보고 싶다고. 소설도 쓰고, 시도 쓰고 싶다고. 그 때까지, 재료를 좀 더 쌓아두고 싶다고.
반응들이 조금 각양각색이라 재밌다. "나도 하는데 너라고 못하겠냐?"라는 펜더 형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그러나 이 말이 더 무시무시하다. 형, 형 정도의 내공은 난 죽었다 깨도 못 따라가요…) "뭐 할 수 있겠지"라는 누님들도 있고. 한편으로는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하는 거나 제대로 하지 웬…'이라는 표정이 역력한 사람도 있다. 그리고- 기획과 정책 등에서 뛰어야지 도로 창작으로 돌아가려 들면 어쩌냐고 꾸짖는 분도 있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수준을 떠나 욕심이 사그라들지 않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그렇다고 어느 한 쪽을 완전히 접을 생각도 없고 보면 창작가 여러분들이 볼 때 화가 날 지도 모르는 노릇이고. (한 가지만 해도 힘든 바닥인데 그딴 정신머리로 뭘 하겠다는 거야!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다면. 비웃음을 사는 한이 있더라도… 해 봐야지.
언제나 내 가슴 속에 자리하고 있는 부채감. 창작가들에게 빚지고 있다는 부채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해야지.
3.
10대 때와는 달리 20대 중반을 넘기며 난 참 편해졌다. 어려서 그다지 웃은 기억은 없고. 20대 초반에는 '무진장 재수 없는 놈'이었다는 소리를 나중에 가서 듣기도 했다. 가까이에서 날 지켜봐 준 이들은 당시의 나를 가슴에 칼을 박은 채 날카롭게 날이 서 있는 상태였다고 이야기해준다. 지금은 어떨까. 그래도 많이 편해졌다. 나름대로 응어리를 다스릴 수 있게 됐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게 됐다. 적당히 섞일 줄 알게 되었고… 동생이 자기 생각을 말할 때 가만히 들어줄 수 있고, 또 생각을 물어 답해주는 여유를 둘 수 있어 행복하다. 어느 날 문득 동생이 들려준 "그래서 오빠가 좋아"라는 말에 속으로 숨죽여 울 수 있는 칠푼이여서 좋다. 지금 정도가 그래도 마음이 참 편하다. 그 마음이 나와 함께 하는 이들에게도 다정함과 편안함으로 다가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아직 거기까진 모르겠다. 다만 내 표정이 참 밝아졌다는 이야기는 자주 듣는다. 그건 다행이다.
그래서 궁금해졌던 것 같다.
지금 이런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내 창작물이라면.
그 때의 그 피고름을 짜내듯 적어내려갔던 글귀들과는 다를 수 있을지.
지금의 눈에서 적어내려가는 내 창작물은.
어떤 색깔, 어떤 냄새를 띠고 있을지.
그게 너무너무 궁금해졌던 것 같다.
4.
나는 일상을 담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
내 망상은 환상 속에 있지 않다. 언제나 현실이다.
그리고… 지금은 행복을 이야기하고 싶다.
스스로 쌓아 올린 절망밖에 몰랐던 내 자신을 부끄러워하듯.
하지만 그 때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
언젠가는.
다시 쓰고 싶다.
누가 뭐라든 즐겁게.
# by | 2006/12/04 03:57 | 삶의 흔적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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