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1월 04일
유시민 복지부장관 내정.
왜 그가 안 되는지를 '맘에 안 들어서'와 '입이 싸서' '얼굴이 촉새같아서' 말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만 좀 나서봐라. 숨지 말고 나서서 말 해봐라.
그나저나. "내가 유시민 의원의 대표적 정적임은 주지의 사실이다"라는 공희준의 글을 보아하니 이쯤이면 과대망상에 자기를 너무 크게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닌가 싶어 쓴웃음이 나지만, 반면에 이런 생각도 드는 거다. 혹시 이 인간이 정치 게시판 꼴통으로 유명한 시민폐수, 나시민, 대한민국 중 하나(혹은 셋 다와) 동일인물 아닐까 하는 것. 물론 아니겠지만, 사람이 미움이 지나쳐 홱 돌고 맛이 가면 결국 비슷해진다는 걸 여실히 느낀다. 나시민이란 인물이 뻑하면 쓰는 게시물 제목을 보시라. "돌아온 노사모의 천적 나시민" 식이다.
정치가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게 아니다. 다만 증오가 사람을 미치게 할 뿐.
정치를 통해 증오를 습득하는 이들은 불행하다. 어느 쪽에 서 있든 똑같아지기 때문이다.
자기 정치적 성향과 위치가 어디라 착각하고 있든, 자기 뜻대로 안 된다고 목을 비틀 수 있었으면 하는 욕구를 억누르지 못하고, 그러지 못하게 하는 이들에 분노를 터트리고, 그럴 수 있었으면 하는 속내를 숨기질 못하는 종족들은 결국 어느 쪽이라도 똑같다. 그들이 제일 싫어하는 부류가 누군지를 보면 답은 간단하다. 열린우리당도 한나라당도 민노당도 유난히 노무현과 유시민을 싫어한다. 우습게도 그 둘이야말로 자기들의 속내를 가장 잘 드러나게 만들어주는 리트머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싫어하지만, 한편으로는 질투에 지나지 않기도 하다. 제아무리 용을 써도, 자신은 그 둘이 지닌 자산을 따라갈 수 없다. 자발적으로 따라 붙는 그 자산을. 그 둘이 스스로 지향해온 바에 따라 달라 붙는 그것들을.
부정적 의미의 ∼빠라는 호칭을 굳이 붙여가며 욕을 해 보지만 그들은 ∼짱이라는 호칭을 자연스레 붙여주는 이들을 만들 수 없다. 그게 그들의 한계다. 누굴 욕하랴.
그리고 공희준 씨. 정말 당신 저질이다.
그나저나. "내가 유시민 의원의 대표적 정적임은 주지의 사실이다"라는 공희준의 글을 보아하니 이쯤이면 과대망상에 자기를 너무 크게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닌가 싶어 쓴웃음이 나지만, 반면에 이런 생각도 드는 거다. 혹시 이 인간이 정치 게시판 꼴통으로 유명한 시민폐수, 나시민, 대한민국 중 하나(혹은 셋 다와) 동일인물 아닐까 하는 것. 물론 아니겠지만, 사람이 미움이 지나쳐 홱 돌고 맛이 가면 결국 비슷해진다는 걸 여실히 느낀다. 나시민이란 인물이 뻑하면 쓰는 게시물 제목을 보시라. "돌아온 노사모의 천적 나시민" 식이다.
정치가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게 아니다. 다만 증오가 사람을 미치게 할 뿐.
정치를 통해 증오를 습득하는 이들은 불행하다. 어느 쪽에 서 있든 똑같아지기 때문이다.
자기 정치적 성향과 위치가 어디라 착각하고 있든, 자기 뜻대로 안 된다고 목을 비틀 수 있었으면 하는 욕구를 억누르지 못하고, 그러지 못하게 하는 이들에 분노를 터트리고, 그럴 수 있었으면 하는 속내를 숨기질 못하는 종족들은 결국 어느 쪽이라도 똑같다. 그들이 제일 싫어하는 부류가 누군지를 보면 답은 간단하다. 열린우리당도 한나라당도 민노당도 유난히 노무현과 유시민을 싫어한다. 우습게도 그 둘이야말로 자기들의 속내를 가장 잘 드러나게 만들어주는 리트머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싫어하지만, 한편으로는 질투에 지나지 않기도 하다. 제아무리 용을 써도, 자신은 그 둘이 지닌 자산을 따라갈 수 없다. 자발적으로 따라 붙는 그 자산을. 그 둘이 스스로 지향해온 바에 따라 달라 붙는 그것들을.
부정적 의미의 ∼빠라는 호칭을 굳이 붙여가며 욕을 해 보지만 그들은 ∼짱이라는 호칭을 자연스레 붙여주는 이들을 만들 수 없다. 그게 그들의 한계다. 누굴 욕하랴.
그리고 공희준 씨. 정말 당신 저질이다.
# by | 2006/01/04 17:40 | 세상 바라보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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