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하니….

['97 Slayers 4 us]를 보면서 새삼 1997년이라는 시기를 되새겨 볼 수 있었다.
다른 거 다 젖혀두고, '내게' 1997년이란?

아팠다. 말 그대로 폐인.
요즘에야 폐인이란 말이 개그소재지만, 그런 거 말고 정말 폐인이었다.
요인은 여러 가지지만 어쨌든 안정제 없인 견딜 수조차 없던 시기.

근데 그 때가 세상에나 고3 시절이었다.
남들 다 야자까지 하느라 죽어날 때, 나는 5시면 집에 돌아와 병원에 들르거나 누워 있었다.
새삼스런 이야기지만 난 1년간 대입공부를 단 한 자도 안 했다. 수능날도 실려 들어가 업혀 나갔으니 뭐.

그 때 내게 만화와 만화영화가 없었고 내가 글 쓰는 걸 좋아하지 않았으며 컴퓨터를 다룰 줄 몰랐다면 정말 나락으로 빠졌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조물주는 공평하셔서, 저런 작달만한 재주 한 두 개와 좋아할 수 있는 대상을 내려주셨고 그에 의지해 어떻게든 괴로운 시기를 버텨낼 수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시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다. 그 때 보고 쓰고 한 녀석들이, 그 때 쌓았던 생각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까.
그래서.
그 땐 죽고 싶을만큼 괴로웠지만. 지금은 그 시기에 감사하는 마음마저 든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오늘도 소쩍새는 그다지도 울어댔는갑다.
내게 1997년이란. 그런 특별하다면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 한 해다.


…….
그래도 그 때마냥 다시 아프라고 한다면 사양하고 싶긴 하지만.

by 서찬휘 | 2005/11/22 07:48 | 삶의 흔적들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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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젠카 at 2005/11/22 10:03
저에게 1997년은 에반게리온을 통해 만화/애니에 처음 빠진 년도, 동시에 만화 탄압의 년도입니다.
Commented by 도리 at 2005/11/22 12:23
저에게 있어서 1997년은 찬휘님과 동호회에서의 만남인 것 같군요. (음?)
Commented by 알비레오 at 2005/11/22 14:19
97년이라... '뭘 했지?' 생각하다가 결국 일기장을 뒤졌습니다. 요즘엔 일기를 잘 안 쓰는데, 다행히 그시절 건 남아 있네요. (...)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적혀 있더군요. 그래도, 그때의 잘못을 계속 하고 있지는 않다는 게 다행이네요. 남들이 보기에, 그때에 비해 지금의 객관적인 상황은 더 나쁘겠지만, 적어도 자신에게 좀더 솔직해 진 것 같습니다.
Commented at 2005/11/22 19:3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한국출장소장 at 2005/11/22 23:41
저는 96년...NHK에서 했던 패트레이버 극장판이군요. 예나 지금이 깊이 관여(?)하지 않고 주변을 맴돌고만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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