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라는 주제가 대중매체에 끼치는 영향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사람은 살아가며 타인에게 많은 상처를 입히고 또 입습니다. 때론 이를 경쟁의 산물이라는 말로 정당화하기도 하지만, 상처의 성질은 본래 ‘아픈 것’입니다. 때문에 자신이 상처 입는 건 좋아하지 않지요. (‘M’ 기질도 있다는 건 논외로 칩시다) 반면에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상황에 대해선 이야기가 조금 갈립니다. 상처를 입은 만큼 그대로 돌려줘야 한다는 시선이 있고, 약하니까 당하는 것이니 강해져서 남들이 내게 상처를 입히지 못하게 하겠다는 시선이 있습니다.

이러한 시선들의 기본은 인과응보와 선악의 대립구도입니다. 상처를 받는 건 싫지만 받았다면 갚아줘야 하고, 받기 싫다면 강해져서 상처를 입히려 드는 무리들이 얼씬도 못하게 하거나 혼내줘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지요. 일견 통쾌하고, 끓어오르는 맛이 있으므로 사람들은 자주 이러한 사고에 경도합니다. 멀리 볼 것도 없죠. 이곳저곳의 게시판이나 토론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수많은 논쟁들은 자신이 정의라는 신념 하나로 상처받지 않은 채 상처를 주고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상황의 반복입니다. 상처입기 두려워할수록 더욱 강하게 내지르며 ‘이러는 게 당연해!’라는 위안을 얻고 싶어 합니다.

대중문화 매체는 그러한 대중들의 심리를 고스란히 비추게 마련이죠. 만화, 그중에서도 소년/청소년 대상의 만화에서 ‘강함’이라는 고전 주제가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견고해 가는 까닭은 갇힌 공간과 몹쓸 경쟁 구도 속에서 상처에 대한 면역력이 극도로 약해진 그 세대 아이들의 심리상태를 고스란히 투영하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아예 상처라는 주제를 최대한 비껴가 가벼운 웃음만 끌어내려 한다거나 유행 코드에 매달리거나 하죠. 어찌 보면 이러한 양극화는 우리의 현실이자 자화상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작품들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방어기제들을 풀어놓는 셈이고, 대중들은 어느 쪽이든 극과 극으로 몰려가 스스로 그 ‘편’에 서서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그 안에서 안심하고 싶어 합니다. 상처에 대한 자기 방어 기제인 셈이죠. 그러니 이를 아프지 않게 비춰내는 작품군이 끊임없이 재생산의 길을 걷고, 유치하단 소리를 들으면서도 주류의 위치를 점할 수 있는 겁니다. 그 또한 인정해야 하는 현실이죠.

다만, 우리는 상처를 입으면 되갚는 방법도 있지만 따스하게 보듬고 치유해 끝내 극복해나가는 모습도 있음을 잊어선 안 됩니다.

(후략)

by 서찬휘 | 2005/10/21 17:40 | 만화/만화영화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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