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11일
소통할 줄 모르는 게 자랑은 아니다.
그리고 그 무지로 말미암아 피해를 입는다 해서 자신을 약자의 위치에 놓고 항변할 수도 없다.
남과 교감하고 소통하고 싶거든 먼저 그 방법을 알아야 한다. 보편타당이 늘 옳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그 사이에 섞이고 싶거든 남을 상처입히진 말아야지. 보이지 않는대서 생각 없이 말하진 말아야지. 세치 혀로 남을 괴롭히진 말아야지. 그러나 소통할 줄 모르기에, 그것이 남에게 어떤 피해를 입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점이 비극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일수록 남의 상처에는 아예 둔감하다못해 무지하면서 자신이 입는 약간의 상처에는 대단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피해망상도 극에 달한다. 누가 뭔 이야기를 해도 자기 얘기 같다. 진정 비극은 이 간득 사이에서 공격본능이 싹트고 만다는 거다. 나는 정상이다. 그런데 남들이 나를 제대로 봐주지 않고 이상하게 쳐다본다. 이를 견딜 수 없으면 그대로 '정상이 아닌' 상대를 공격해도 괜찮다는 미묘한 정의감이 싹트고 만다. 그리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기 시작한다. 마침 상대가 보이지도 않는 모니터 앞에서야 뭘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전제자체가 잘못됐음을 그는 영영 알지 못한다. 단지 자신이 상처입었음을, 자존심에 금이 갔음만을 생각할 뿐이다. 전제는 무엇인가? 나는 정상이다. 그런데 그런 나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틀렸다고 말한다. 이게 뭔가 이상하다는 거다. 필사적으로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정상에 대한 정의마저 파고들어 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을 정상으로 봐주지 않는다. 나는 분명 그들에게 다가가고 싶어 호의를 베풀었는데 왜 호의로 받아주지 못할까? 오히려 혼을 내고 있네? 감히 나를? 그 순간 징벌자가 된다. 벌해야 한다. 나는 정상이고 정의인걸. 감히 당신들의 정의로?
논리로야 물론 '당신들의 정상에 대한 정의를 나에게 덮어 씌울 수 없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은 기본적으로 '남을 배려할 것'이라는 대전제가 깔려 있어야만 가능하다. 남의 눈치를 살피라는 것도 아니고 단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서 자기 자신을 조금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정도만 해줄 수 있으면 충분하다. 이 배려를 상실한 사람을 사람들은 당연히 배려하지 않는다. 배려란, 단지 가까이 다가가려 든다고, 좋아한다 골백번을 말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상대를 불쾌하게 하지 않을 정도의, 혹여나 오해가 있다면 풀기 위해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마음가짐이 필요한 거다. 여유도 필요하고 표정도 필요하다. 정치적 수사를 제아무리 늘어놓는다고 본심이 시커멓다면 누구라도 눈치를 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그 자체로도 불쾌해 한다. 사람들은 그 모든 경우의 수를 자연스럽게 가늠해 말을 하고 표정을 짓는다. 그것이 소통의 기본이다.
소통이 막혀 있다 해서, 배려심이 없다 해서 그것만으로 사람이 감정 문제로 치닫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이들이 점차 자신의 세계에 묻힌 나머지 상대에 심각한 심리적, 물리적 피해를 끼치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이런 이들에겐 징벌심리가 있다.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여기는 거다. 여전히 자신은 정상이라 여기기에, 자신이 책임져야 할 부분에 대해선 생각을 하지 못한다. 분노는 증오를 낳고 증오는 폭력을 낳는다. 그조차 그에겐 정의이므로 거리낌이 없다. 갈수록 옆이 보이지 않는다. 자신은 정상이니까. 끝내 법의 심판이라는 형태로 벌을 받는 입장에 서더라도 저주만을 내뱉을 뿐이다. 그에게 필요한 건 법도 법이지만 그 이전에 가까이에서 대화를 나눠줄 수 있는 상대, 그리고 잘못됐을 때 싸대기를 갈겨줄 수 있는 선배, 그리고 상담자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나마 머리가 조금 더 좋은 사람들은 끝끝내 논리로 자신을 감싸 솜씨좋게 도망가려 들지만. 그래봐야 버릇없는 꼬맹이 소리를 안 들을 수 없다.
마음이 약하고 병든 자는 필사적으로 강하게 보이려 든다. 약한 입장임을 내세우고 끝끝내 약한 입장이기를 고수하며, 그것으로 (자신의 입장에서) 강한 자들을 비판하고 욕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목소리는 강하다. 그 강한 외침, 그 강하게 외칠 수 있는 대상이 있고 내가 그럴 수 있는 입장이라는 것만이 자신을 지탱시켜주는 존재 의미이기 때문이다.
소년 만화와는 달리 세상은 강한게 정의인 건 아니고, 약하다 해서 죄악인 것도 아니다. 사람 모두가 강해질 순 없다. 그러나 약한 입장임을 인지하고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생각과 말과 행동에 충실하며 스스로를 닦아나가는 것과는 달리, 자신의 반대 입장에 서 있(다고 여기)는 이들을 향해 불만을 쏟아내며, 그 입장으로 도망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생산성은 없다. 오로지 배설물만이 남을 뿐이다. 어린 취급, 정신병자 취급 받는 걸 누구보다도 싫어하면서 정작 가장 급할 때면 나이나 정신병력을 들이대는 이들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다. 때론 정신병력을 매우 당당히 이용해 법적으로도 승리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정말 정신과를 찾는, 고통받는 이들의 모습을 익히 보아온 입장에서는 고까운 노릇일 뿐이다. 도망칠 게 없어 그토록 고통스러운 길로 도망치는가? 당신들은 진정 남의 고통을 모르고 자신의 고통도 모른다. 단지 좋고 싫고, 옳고 그르고, 나는 정상이고 그런 나를 정상 취급하지 않는 당신들이 비정상이라는 흑백 구별밖에 없는 것이다.
이들의 행동은 일종의 패턴이다. 문제를 일으키는 이들을 보면 태반이 비슷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대응 방법이 없다. 이들의 반응이란 상식이란 게 통하지 않을 정도로 즉흥적이고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지켜보고 있는 한 사람 또한 그 흐름을 그대로 답습해간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그는 이미 억지로라도 붙들어 쉬게 해 주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아 보인다. 물론 겉으로는, 바깥에서는 건실한 사람으로 비춰질지도 모른다. 부모에게는 착한 아들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이토록 스스로를 주체 못하는 모습은 위험하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 지 모르는 폭탄과도 같기 때문이다.
이들은 예방할 수도 없다. 찾아오면 굴다리 밑에서 얻어맞아주는 수밖에 없다. 차라리 한쪽 뺨을 맞으면 한쪽마저 내밀어주고 어서 나가주길 바랄 수밖에. 그게 운영자, 혹은 공인이라는 입장에 서 있는 이들의 숙명이다. 징벌자가 징벌을 내려준다는데 어쩌랴.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어서 가라고 빌 수밖에. 바로이음(온라인)에서 여러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입장에 서는 사람은 그래서 괴로울 수밖에 없다. 강자 취급을 받고 있지만 실제로 무엇도 할 수 없다. 그 점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상대에게 다가오고 싶어하는 이들을 어찌 말릴 수가 없다. 다가오는 게 지나쳐 실례가 되고 폐를 끼쳐 혼을 내면 어느 사이에 징벌자로 돌변한다. 법대로 가면서도 증오를 뒤집어 써야만 하는 가련한 입장인 거다. 어쩌랴. 사람들이 좀 더 배려심을 갖춰주길 바랄 뿐. 오면 오는 대로 얻어맞아줄 수밖에 없는 게 숙명이다. 그냥, 아는 사람한테 전화해서 속풀이나 하는 수밖에.
그래서 웃긴 거다. 관심 있다고, 좋아한다고 하는 말들이나, 친하고 싶다며 다가오는 걸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이기에는 이쪽 사람들은 당한 게 많다. 그리고 알면서도 또 당한다. 1:1도 아니고, 한 공간을 찾아주는 여러 사람까지도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되므로 말하기도 껄끄럽다. 소통하는 방법도 모르고 배려도 없이 오로지 배려받기만을 원하니 말도 안 통한다. 한 사람만을 사랑해줄 수도 없고 관심 보여줄 수도 없고 대답해줄 수도 없다. 그래주지 않았다고, 그러지 말라고, 오히려 그럼 안 된다고 했다고 화를 내면 방법은 둘 중 하나다. 그러는 놈을 철저히 밟아주든지 공간을 닫든지.
운영자로서 이런 상황들을 자주 겪기도 겪고 비슷한 입장에 놓인 사람들이 겪는 일도 종종 보지만,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공간 열어놓고 있다고, 운영자라고, 공인이라고 만능도 아니고. 당신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줬음 하는 거다. 배려는 늘 모두에게 같이 하지만, 한 사람에게만 특별히 배려할 순 없다. 배려받지 못했다고 화를 내기 시작하면 감당할 수 없다.
그 투정 받아주려고 이 짓 하고 살고 있는 게 아니므로 웬만하면 좀 자제해주고, 정히 못하겠으면 당신이 감방엘 가야 한다는 거다. 이 단순무식한 공식을 몰라주면 정말 애먹는다. 말은 이리 해도, 나만해도 늘 뺨을 단련시켜놓고 있다. 언제 누가 튀어나와서 "님 조아여"하다가 "이런 개새끼가 다 있어"로 돌변하더라도 어쨌든 웃어줄 수 있기 위해서. 비극이지만 어쩌랴. 나는 그만둘 생각이 없으니 상대를 그만두게 해 줄수밖에. 늘 준비한다. 어지간히 맞아선 아픈 시늉도 내지 않게끔.
이리 말해도, 지인에게 "당신은 아직도 독기가 덜 빠졌다"는 말을 듣고 반성중이지만.
그들은 나 한 사람을 향해 1:1로 악의 대마왕을 상대하는 기분으로 증오심을 내뱉지만 내 입장에선 용자를 맞이하는 대마왕마냥 1:다수인 매우 불리한 싸움이다. 그 증오를 다 들이마셔야만 하는 입장인 거다. 서로가 다 정의의 용자라고 주장하니 그것도 웃기지만. 그 독기들을 중화시킬 수 있을만큼 내가 나이가 들질 않아 아직도 속에서 부대끼는 건 어쩔 수가 없다.
..................................
여하간 이리저리 길고 정신없는 글이지만 하고픈 말은 한 마디.
현재 어떤 누군가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있는 어떤 분께.
늘 있는 일입니다. 물론 속 상하고 힘들어도, 이런 걸로 속 계속 끓이면 오래 못 합니다.
웃으면서 끝을 봐 주세요.
종종 대사 중에도 그런 거 있죠.
이미 좀비로 전락한 인간에게 베풀 수 있는 최대의 자비는, 더 고통받지 않게끔 고이 보내주는 겁니다. 더 움직일 수 없게끔 심장이나 뇌를 겨냥해서.
남과 교감하고 소통하고 싶거든 먼저 그 방법을 알아야 한다. 보편타당이 늘 옳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그 사이에 섞이고 싶거든 남을 상처입히진 말아야지. 보이지 않는대서 생각 없이 말하진 말아야지. 세치 혀로 남을 괴롭히진 말아야지. 그러나 소통할 줄 모르기에, 그것이 남에게 어떤 피해를 입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점이 비극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일수록 남의 상처에는 아예 둔감하다못해 무지하면서 자신이 입는 약간의 상처에는 대단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피해망상도 극에 달한다. 누가 뭔 이야기를 해도 자기 얘기 같다. 진정 비극은 이 간득 사이에서 공격본능이 싹트고 만다는 거다. 나는 정상이다. 그런데 남들이 나를 제대로 봐주지 않고 이상하게 쳐다본다. 이를 견딜 수 없으면 그대로 '정상이 아닌' 상대를 공격해도 괜찮다는 미묘한 정의감이 싹트고 만다. 그리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기 시작한다. 마침 상대가 보이지도 않는 모니터 앞에서야 뭘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전제자체가 잘못됐음을 그는 영영 알지 못한다. 단지 자신이 상처입었음을, 자존심에 금이 갔음만을 생각할 뿐이다. 전제는 무엇인가? 나는 정상이다. 그런데 그런 나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틀렸다고 말한다. 이게 뭔가 이상하다는 거다. 필사적으로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정상에 대한 정의마저 파고들어 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을 정상으로 봐주지 않는다. 나는 분명 그들에게 다가가고 싶어 호의를 베풀었는데 왜 호의로 받아주지 못할까? 오히려 혼을 내고 있네? 감히 나를? 그 순간 징벌자가 된다. 벌해야 한다. 나는 정상이고 정의인걸. 감히 당신들의 정의로?
논리로야 물론 '당신들의 정상에 대한 정의를 나에게 덮어 씌울 수 없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은 기본적으로 '남을 배려할 것'이라는 대전제가 깔려 있어야만 가능하다. 남의 눈치를 살피라는 것도 아니고 단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서 자기 자신을 조금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정도만 해줄 수 있으면 충분하다. 이 배려를 상실한 사람을 사람들은 당연히 배려하지 않는다. 배려란, 단지 가까이 다가가려 든다고, 좋아한다 골백번을 말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상대를 불쾌하게 하지 않을 정도의, 혹여나 오해가 있다면 풀기 위해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마음가짐이 필요한 거다. 여유도 필요하고 표정도 필요하다. 정치적 수사를 제아무리 늘어놓는다고 본심이 시커멓다면 누구라도 눈치를 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그 자체로도 불쾌해 한다. 사람들은 그 모든 경우의 수를 자연스럽게 가늠해 말을 하고 표정을 짓는다. 그것이 소통의 기본이다.
소통이 막혀 있다 해서, 배려심이 없다 해서 그것만으로 사람이 감정 문제로 치닫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이들이 점차 자신의 세계에 묻힌 나머지 상대에 심각한 심리적, 물리적 피해를 끼치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이런 이들에겐 징벌심리가 있다.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여기는 거다. 여전히 자신은 정상이라 여기기에, 자신이 책임져야 할 부분에 대해선 생각을 하지 못한다. 분노는 증오를 낳고 증오는 폭력을 낳는다. 그조차 그에겐 정의이므로 거리낌이 없다. 갈수록 옆이 보이지 않는다. 자신은 정상이니까. 끝내 법의 심판이라는 형태로 벌을 받는 입장에 서더라도 저주만을 내뱉을 뿐이다. 그에게 필요한 건 법도 법이지만 그 이전에 가까이에서 대화를 나눠줄 수 있는 상대, 그리고 잘못됐을 때 싸대기를 갈겨줄 수 있는 선배, 그리고 상담자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나마 머리가 조금 더 좋은 사람들은 끝끝내 논리로 자신을 감싸 솜씨좋게 도망가려 들지만. 그래봐야 버릇없는 꼬맹이 소리를 안 들을 수 없다.
마음이 약하고 병든 자는 필사적으로 강하게 보이려 든다. 약한 입장임을 내세우고 끝끝내 약한 입장이기를 고수하며, 그것으로 (자신의 입장에서) 강한 자들을 비판하고 욕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목소리는 강하다. 그 강한 외침, 그 강하게 외칠 수 있는 대상이 있고 내가 그럴 수 있는 입장이라는 것만이 자신을 지탱시켜주는 존재 의미이기 때문이다.
소년 만화와는 달리 세상은 강한게 정의인 건 아니고, 약하다 해서 죄악인 것도 아니다. 사람 모두가 강해질 순 없다. 그러나 약한 입장임을 인지하고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생각과 말과 행동에 충실하며 스스로를 닦아나가는 것과는 달리, 자신의 반대 입장에 서 있(다고 여기)는 이들을 향해 불만을 쏟아내며, 그 입장으로 도망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생산성은 없다. 오로지 배설물만이 남을 뿐이다. 어린 취급, 정신병자 취급 받는 걸 누구보다도 싫어하면서 정작 가장 급할 때면 나이나 정신병력을 들이대는 이들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다. 때론 정신병력을 매우 당당히 이용해 법적으로도 승리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정말 정신과를 찾는, 고통받는 이들의 모습을 익히 보아온 입장에서는 고까운 노릇일 뿐이다. 도망칠 게 없어 그토록 고통스러운 길로 도망치는가? 당신들은 진정 남의 고통을 모르고 자신의 고통도 모른다. 단지 좋고 싫고, 옳고 그르고, 나는 정상이고 그런 나를 정상 취급하지 않는 당신들이 비정상이라는 흑백 구별밖에 없는 것이다.
이들의 행동은 일종의 패턴이다. 문제를 일으키는 이들을 보면 태반이 비슷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대응 방법이 없다. 이들의 반응이란 상식이란 게 통하지 않을 정도로 즉흥적이고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지켜보고 있는 한 사람 또한 그 흐름을 그대로 답습해간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그는 이미 억지로라도 붙들어 쉬게 해 주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아 보인다. 물론 겉으로는, 바깥에서는 건실한 사람으로 비춰질지도 모른다. 부모에게는 착한 아들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이토록 스스로를 주체 못하는 모습은 위험하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 지 모르는 폭탄과도 같기 때문이다.
이들은 예방할 수도 없다. 찾아오면 굴다리 밑에서 얻어맞아주는 수밖에 없다. 차라리 한쪽 뺨을 맞으면 한쪽마저 내밀어주고 어서 나가주길 바랄 수밖에. 그게 운영자, 혹은 공인이라는 입장에 서 있는 이들의 숙명이다. 징벌자가 징벌을 내려준다는데 어쩌랴.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어서 가라고 빌 수밖에. 바로이음(온라인)에서 여러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입장에 서는 사람은 그래서 괴로울 수밖에 없다. 강자 취급을 받고 있지만 실제로 무엇도 할 수 없다. 그 점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상대에게 다가오고 싶어하는 이들을 어찌 말릴 수가 없다. 다가오는 게 지나쳐 실례가 되고 폐를 끼쳐 혼을 내면 어느 사이에 징벌자로 돌변한다. 법대로 가면서도 증오를 뒤집어 써야만 하는 가련한 입장인 거다. 어쩌랴. 사람들이 좀 더 배려심을 갖춰주길 바랄 뿐. 오면 오는 대로 얻어맞아줄 수밖에 없는 게 숙명이다. 그냥, 아는 사람한테 전화해서 속풀이나 하는 수밖에.
그래서 웃긴 거다. 관심 있다고, 좋아한다고 하는 말들이나, 친하고 싶다며 다가오는 걸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이기에는 이쪽 사람들은 당한 게 많다. 그리고 알면서도 또 당한다. 1:1도 아니고, 한 공간을 찾아주는 여러 사람까지도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되므로 말하기도 껄끄럽다. 소통하는 방법도 모르고 배려도 없이 오로지 배려받기만을 원하니 말도 안 통한다. 한 사람만을 사랑해줄 수도 없고 관심 보여줄 수도 없고 대답해줄 수도 없다. 그래주지 않았다고, 그러지 말라고, 오히려 그럼 안 된다고 했다고 화를 내면 방법은 둘 중 하나다. 그러는 놈을 철저히 밟아주든지 공간을 닫든지.
운영자로서 이런 상황들을 자주 겪기도 겪고 비슷한 입장에 놓인 사람들이 겪는 일도 종종 보지만,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공간 열어놓고 있다고, 운영자라고, 공인이라고 만능도 아니고. 당신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줬음 하는 거다. 배려는 늘 모두에게 같이 하지만, 한 사람에게만 특별히 배려할 순 없다. 배려받지 못했다고 화를 내기 시작하면 감당할 수 없다.
그 투정 받아주려고 이 짓 하고 살고 있는 게 아니므로 웬만하면 좀 자제해주고, 정히 못하겠으면 당신이 감방엘 가야 한다는 거다. 이 단순무식한 공식을 몰라주면 정말 애먹는다. 말은 이리 해도, 나만해도 늘 뺨을 단련시켜놓고 있다. 언제 누가 튀어나와서 "님 조아여"하다가 "이런 개새끼가 다 있어"로 돌변하더라도 어쨌든 웃어줄 수 있기 위해서. 비극이지만 어쩌랴. 나는 그만둘 생각이 없으니 상대를 그만두게 해 줄수밖에. 늘 준비한다. 어지간히 맞아선 아픈 시늉도 내지 않게끔.
이리 말해도, 지인에게 "당신은 아직도 독기가 덜 빠졌다"는 말을 듣고 반성중이지만.
그들은 나 한 사람을 향해 1:1로 악의 대마왕을 상대하는 기분으로 증오심을 내뱉지만 내 입장에선 용자를 맞이하는 대마왕마냥 1:다수인 매우 불리한 싸움이다. 그 증오를 다 들이마셔야만 하는 입장인 거다. 서로가 다 정의의 용자라고 주장하니 그것도 웃기지만. 그 독기들을 중화시킬 수 있을만큼 내가 나이가 들질 않아 아직도 속에서 부대끼는 건 어쩔 수가 없다.
..................................
여하간 이리저리 길고 정신없는 글이지만 하고픈 말은 한 마디.
현재 어떤 누군가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있는 어떤 분께.
늘 있는 일입니다. 물론 속 상하고 힘들어도, 이런 걸로 속 계속 끓이면 오래 못 합니다.
웃으면서 끝을 봐 주세요.
종종 대사 중에도 그런 거 있죠.
이미 좀비로 전락한 인간에게 베풀 수 있는 최대의 자비는, 더 고통받지 않게끔 고이 보내주는 겁니다. 더 움직일 수 없게끔 심장이나 뇌를 겨냥해서.
# by | 2005/10/11 05:09 | 삶의 흔적들 | 트랙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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