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를 앞두고.

1.

그리고보니, 난 매년 후반기 쯤엔 누리집을 하나 둘 씩 꼭 제작해 왔다. 그것도 개인 공간이 아니라 행사용으로. 나는 매해 이를 스스로의 판올림 기회로 삼아왔고 큰 공부를 공짜로 해 왔다는 마음을 품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해가 갈수록 상황상 필요로 하는 부분이, 또 요구받는 부분이 커 감을 느끼며 적잖은 부담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내 업보긴 하지만 나에겐 스승도 없었고 어디에서 배운 것도 아닌지라 큰 덩어리가 앞에 놓였을 때 이를 헤쳐나가는 방식은 오로지 스스로의 감과 현재의 실력 그 자체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이는 내게 큰 재산이기도 하지만 갈수록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정말 "그까이거 그냥 하면 나오는 거 아니야?"라는 택도 없는 소리를 해댈 때도 누구 붙들고 하소연하지도 못한다.


2.

어쩌다보니 먼저 불씨로 던진 녀석이 눈 앞에 큼지막한 일거리로 돌아와 있다. 늘 각오야 하는 부분이지만 막상 시작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니 숨이 조금 막혀 온다. 스스로 계산대에 올려놓은 물건들의 가격이 꽤 묵직해 보이기 때문이다.

> UTF-8 기본
> CSS 본위의, 잔 기교 없이 단순하지만 명확한 웹디자인
> 산뜻한 색상 사용 (요 부분이 내겐 가장 숙제거리… 색채 관련 책이라도 사야 할까?)
> 목록의 RSS 지원
> 가독성 상승
> 모든 자체 생산 글들의 트랙백 지원
> 편집기 성능 보완
> 다중 주제 분류가 가능한 편집 인터페이스
> HTML 출판 형식
> DB에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저장 체계

……등등.

지금까지 해 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부분들의 시도.
언제가 됐든 공부해야 하는 부분들이라 생각하고 있던 터라, 한편으로는 나 스스로가 너무도 기대해마지 않는 작업들이다. [만화인]에 적은 글마냥 나는 "다시 내 전장에 섰구나"하는 기분이다. 저걸 내 손으로 만들어내면, 나는 다시 한 번 '연말 판올림'을 할 수 있다. 그건 정말 달뜬 기분이다. 중간에 변수도 있을 거고, 끝내 다 해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래도 해내겠지.

다만, 그와 함께 엄습하는 부담감도 상당히 크다. 글을 쓸 때도 늘 부담을 느끼긴 하지만, 이건 아예 집 한 채를 기초부터 시작해 지어 올리는 작업이다. 그 안에 들어갈 살 사람들에게서 나타날 온갖 경우의 수를 다 계산해보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다. 더구나 이번 건, 정말 '매체'다. 과연 내가, 그까이거 그냥 만들면 어떻게든 낼 수 있지 않겠냐-따위로 생각할 수 있겠는가? 부탁해 오면 어떻게든 맞춰주니까 너무 편하게 생각들 하곤 해서 가끔 속이 벅벅 긁힐 때가 있는데, 그렇지가 않다고. 심지어 그에 맞춰 스스로에게 던진 숙제란 게, 해왔던 것들을 재활용하느니 같은 걸 써먹기도 곤란한 녀석들 뿐이다.

…….
말로는 편하게, 널널하게 가자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삽질을 죽어라 해야 하는 입장에선 정말 갈 길이 멀다. 하지만 그야말로 하던대로 짜 내면 되잖느냐고 하면, 발전이 없잖아 발전이. 나는 아직 성장하고 싶다. 내 뒤를 쫓아올 사람들이 그냥 그런 인간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진 않다. 나 비록 정력은 세지 않아도, 등짝만은 넓어! (버럭)


3.

이번 공간은 기존과는 달리 '행사용'이 아니라 내 '일터'가 될 공간이다. 난 이 공간이 목표를 잃지 않고 진정 영향력을 갖춘 매체로 키울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이곳에서 내가 일한 만큼의 수익을 얻기를 바란다. 다시 말해, 그럴 수 있을만한 공간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만화인]만으로도 족하지 않을까.

난 왜 이걸 하고 싶어할까? 제대로 된 무언가가 돌아갈 수 있음을 먼저 내 눈으로 보고 싶기 때문이다. [만화인]은 여길 통해 더 클 수 있을 거다. 그 연결고리가 오롯이 [만화인]으로도 향할 것이기에.

내가 짓는다. 움직여야 할 사람이 직접 짓는다.
부하는 크지만, 늘 하던 일. 그리고 앞으로도 해 나갈 일.
할 수 있겠지. 그리고 해야 한다.

나는 남 박사.
독수리 오형제가 뛰놀 장소와 무기를 만드는 것이 내 일.
그 목표를 위해서라면 삽질 정도는 웃으며 해 주겠어.
다만 그 과정에서 또 무지 외로워하고 힘들어할 거다.
평소엔 웃어 넘길 욕지거리나 비아냥조차도 가끔 못 넘기게 될 정도로 지칠 때.
살며시 등을 대 주는 사람을 이번엔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by 서찬휘 | 2005/08/15 05:40 | 만화/만화영화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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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로느 at 2005/08/15 06:55
하시는 일 잘 되길 바랍니다!
Commented by yimooky at 2005/08/15 16:15
힘내세요!
Commented by 사도 at 2005/08/21 06:27
살며시 등을 대주는 분들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멀어서 등은 못 닿아도 마음 깊이 응원하고 있는 사람도 여기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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