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든 생각이지만.
생각해보면 IMF를 직격으로 얻어맞은 세대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를 안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거다. 자기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거대한 힘에 휩쓸려 나라가, 집이 무너지는 모습을 직간접적으로 지켜봐야만 했고 그 자신도 등록금에서부터 시작해 취직을 비롯한 다양한 부분에서 무기력, 분노를 경험하게 되었으니까.
기성 질서를 향한 실망과 배신감, 취업률 조사나 다니는 대학, 청춘과 미래에 관한 고민보다 영어 공부 열심히 하라는 교수의 일갈이나 듣고 있어야 하는 하루하루. 그런 시기를 겪으며 급하게 사회 격랑 속에 빨려들어가 생존을 위해 다른 걸 접어둬야만 했던 이들. 그들이 이제 30대에 접어들었다. 아래에선 선배 세대들이 해 준 것이 없다는 소리나 듣고, 위에선 지금 20대들과 싸잡혀 비웃음을 당하면서 토익 점수와 자격증, 공무원 시점을 쳐다본다.
사실 어떻게든 살아는 간다.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다만 이 세대 심리 근저에 자리한 어차피 우린 안 된다는 류의 사고방식은 쉽게 극복하기가 어려운 것 아닐까 생각한다. 자기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움직임에 악을 써 봐야 떼밖에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고 만 이상, 자기 손이 닿지 않는, 정확하게는 않아 보이는 것에 입을 열어봐야 이득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사실은 입을 열고 움직이고 치받아야 사람 꼴로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이겠으나- 사람이 마음에 입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하물며 전국가적 재앙 앞에서야.
어쩌면 IMF를 몸으로 겪지 않은 현 20대 젋은이들이 급진보수화하는 건 이런 앞 세대를 꼴불견이라 느낀 반동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생각해 보면 동생 세대들은 형이나 오빠가 못나 보이거나 엇나가면 나라도 잘 해야지라면서 오히려 엇나가지 않으려고 애를 쓰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 하고픈 게 뭔지를 생각하지 못한다는 부작용이 나오긴 하지만, 기성세대가 원하는 방향을 좇게 되는 효과는 있게 마련. 어느 쪽이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를 모른다고 나쁜 인생인 것만은 아니니까. 다만 큰 그림으로 볼 때엔 안타까워질 따름. 그 앞세대는 정말 후배들에게 줄 수 있는 게 없고, 후배들은 그걸 비웃으면서 결국은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게 되고. 그 앞앞 세대라 할 수 있는 이들은 이들을 싸잡아 비웃고. 솔직히 말해서 지금 20대보다는 정말 그 사이에 완전히 끼어 있다시피 한 30대 초반들이 제일 불쌍하다면 불쌍하다. 그들은 비웃음조차 못 살 만큼 사회 담론에서 '논외'되어 있다. 없는 세대. 97, 98학번쯤 되는 이 세대들은 그냥 투명인간 세대라 부르는 게 낫겠다. 차라리 논란의 중심에 서 있을 수 있는 88만원 세대는 관심이나 받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방향 수정의 기회도 성찰의 기회도 안에서 밖에서 계속해서 주어지고 있지만- 이미 지나간 채 잊혀지고 있는 이들은 이제 곧 있으면 더할나위 없이, 어쩌면 어느 세대보다 훨씬 더 꼰대가 되어 세상에 민폐를 끼치게 될 거다.
어느 방향이 됐든 사람은 제 머리로 살아나가야 한다. 세대론을 비웃으려면 상처니 뭐니를 다 끌어 안고 제 방향 잡고 알아서 살아나가는 수밖에 없다. 세대론에 화낼 필요가 있을까. 보란듯이 잘 살아내면 되는 것을, 사실은 언제나 그러하듯, '자신이 그러하지 못하기 때문'에 규정당하는 것에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도 언제까지나 무기력할 수도 없는 것이고, 무능해 보인다고 멋대로 생각해도 실제로 그러한지를 보지 못하면 그저 선배랍시고 준 것도 없고 대단한 것도 없다며 툴툴대는 데에서 그치겠지. 세대론을 넘는 방법은 규정에 반발하는 게 아니라 규정 밖으로 뛰어나가 보는 것이다. 어쩌면 비판적 규정의 역할은 그 촉매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보면 짜증은 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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